[한경에세이] 나의 잉어 이야기
우리 집 사랑채 앞에는 정원이 있다. 15년 전쯤엔 정원 한쪽 구석에 있던 우물을 개조해 작은 연못도 만들었다. ‘물고기 몇 마리 풀어 놓으면 멋지겠지’ 하는 순진한 기대는 2주 만에 깨졌다. 잉어들이 밤낮의 수온 차를 견디지 못한 것이다. 무지가 불러온 참사였다.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는 도전 의식이 생겼다. 책도 읽고 사이트도 뒤지며 공부했다. 비단잉어 붐을 일으킨 일본 니가타현에서 직접 새끼 잉어를 들여오기도 했다. 비단잉어는 모두 빨간색인 줄만 알던 난 헤엄치는 모습만 봐도 아픈지 건강한지를 아는 ‘잉어 박사’가 됐다.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애착이 강해질수록 우리집 연못은 ‘물 반 잉어 반’이 돼 갔다. 한가로이 헤엄쳐야 할 잉어들이 다닥다닥 붙어 다녔다. 이런 과밀화 현상 탓에 잉어들은 씨알이 작아졌고, 병들거나 죽는 놈도 생겼다. 주인의 과욕으로 애꿎은 생명들이 천수(天壽)를 못 누린 것이다.

이처럼 바람 잘 날 없는 연못과 달리 정원은 언제나 평온하고 싱그럽다. 꽃과 나무 하나하나에 정성을 쏟는 ‘착한 주인’ 덕분이다. 내 아내는 매일 아침 ‘너 참 예쁘다’ ‘오래오래 피어라’며 칭찬과 덕담을 건넨다. 그래서일까. 우리 집 식물들은 거실 화분조차 좀체 시드는 법이 없다. 이런 아내를 보며 ‘사랑이라는 감정이 식물에게도 강한 생명력을 불어넣는구나’를 새삼 깨닫는다.

나이가 들고 세상을 알면 알수록 복잡한 것보다 단순한 게 좋아진다. 예전엔 특이한 색깔과 모양의 잉어를 좋아했지만, 지금은 흰 바탕에 붉은 무늬가 있는 ‘홍백’이 좋다. 아무것도 모를 때는 밋밋하게만 보이던 수묵화가 알아갈수록 먹의 다채로움이 느껴지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

가끔 직원들에게 입버릇처럼 얘기한다. ‘30대 때는 돈을 많이 벌어서 40대에 은퇴해 하고 싶은 것 다 하며 사는 게 꿈이었는데, 지나고 보니 부질없는 생각이었노라’고. ‘삶 속에서 맞닥뜨린 숱한 시행착오에서 얻은 경험과 지혜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라고. 회장의 말이기에 고개를 주억거리면서도 직원들은 별로 공감하지 못하는 눈치다. 하긴 나도 그맘때 그랬으니까. 그들도 주어진 삶을 오롯이 겪어낸 뒤에야 비로소 평범한 하루의 소중함을 깨달을 터.

오늘도 나는 정원을 걸으며 연못의 잉어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스친다. ‘인간이 제아무리 최첨단 기계를 개발하고 똑똑함을 뽐내면 뭐하나. 저 살아 있는 잉어 한 마리 꽃 한 포기도 만들지 못하는데….’

김한 < JB금융그룹 회장 chairman@jbf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