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이자마진이 급감해 수익을 내기 점점 어려워진 상황에 부닥친 은행들이 새로운 기회를 발판 삼아 수익성 높이기에 나섰다.

지난 26일 3단계 계좌이동제가 시행된 데 이어 다음 달 14일에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의 출시가 시작돼 경쟁을 격화시키고 있다.

계좌이동제의 시행으로 전국 은행의 영업점과 웹사이트에서 고객들이 간단히 주거래 계좌를 옮길 수 있게 됨에 따라 600조원이 넘는 자동이체 시장을 두고 '주거래 고객 잡기' 경쟁이 본격화됐다.

다음으로 내달 ISA가 출시되면 저금리 기조 속에서 돈을 굴릴 곳을 찾는 고객들의 이동이 다시 활발해질 것으로 예측된다.

ISA는 계좌 하나에 다양한 금융 상품을 넣어 운용하면서 세제 혜택을 볼 수 있도록 설계된 '만능 계좌'다.

연봉 5천만원 이상 근로자와 종합소득 3천500만원 이상 사업자는 의무가입 기간인 5년 만기를 채울 경우 ISA 계좌에서 나온 전체 수익금의 200만원까지 비과세 혜택을 받는다.

연간 정기예금 이자로 200만원을 받으려면 1억3천만∼1억4천만원을 맡겨야 하는 점을 고려하면 '비과세 바구니'인 ISA에 넣어 자금을 운용하려는 고객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은 출시 한 달을 앞둔 지난 14일 증권사의 영역이던 일임형 ISA를 은행에도 전격적으로 허용함으로써 은행과 증권사의 업권 간 수익률 경쟁에도 불을 붙였다.

ISA는 예·적금 같은 원금 보장형 상품을 주로 담는 신탁형과 펀드, 주가연계증권(ELS) 등 수익 추구형 상품으로 구성되는 일임형으로 나뉜다.

일임형 ISA는 고객으로부터 투자 의사 결정권을 위임받아 시장 상황에 맞게 자금을 운용하게 된다.

수익성 저하로 고심하는 은행에는 새로운 기회와 함께 기존에 하지 못하던 영역에서 경쟁해야 하는 도전의 장이 열린 셈이다.

◇ 은행권, 다변화·신기술 도입 등으로 적극 대응

은행들은 계열사와의 시너지를 모색하거나 점포의 다변화에 나서는 등 강점을 살려 고객을 끌어모으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증권사들과 동등한 환경에서 수익률 대결을 벌이게 된 은행의 최대 강점은 점포가 훨씬 많아 다양한 고객 접점에서 고객 유치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은행권 전체 지점은 7천300여 곳이고, 증권사 지점은 1천200여 곳이다.

은행들은 이미 점포 조직을 재편함으로써 ISA의 도입에 대비하고 있다.

이른바 '허브 앤드 스포크(Hub & Spoke)' 방식으로 가까운 영업점을 묶어 그룹화하고 시너지를 창출하는 협업 모델을 KB국민·신한·NH농협은행 등이 앞다퉈 도입하고 있다.

ISA의 도입에 맞춰 자산관리 서비스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점주권 내에 자산관리, 기업금융 등 특화지점과 일반 영업점이 혼재해 있으므로 서로 협업하면 한 지점에서 예전보다 다양한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영업점에서 증권·은행·보험 등의 업무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복합점포의 활용을 확대하는 것도 이런 연장선상에 있다.

ISA의 도입에 따라 자산관리 수요가 확대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은행들은 자산관리 서비스의 확대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자산관리서비스를 제공하는 고객을 기존의 자산가에서 '준자산가'로 불리는 이들까지 범위를 넓히고, 이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 점포도 확대하는 식이다.

로보어드바이저와 관련한 시스템을 조기에 구축하는 방안도 나오고 있다.

로보어드바이저는 로봇을 의미하는 '로보(robo)'와 자문 전문가를 의미하는 '어드바이저(advisor)'의 합성어로,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투자자 성향에 맞는 투자 포트폴리오를 설정하고 알고리즘에 따라 자동으로 투자를 진행해 주는 서비스다.

계열 증권사 등과의 시너지를 확대하는 것도 은행의 주요 전략 중 하나다.

신한금융에서 그룹 내 협의체를 구성해 신한금융투자에서 ISA 전용 특화상품을 개발하고 양 영업점에서 공동 판매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계열사가 적은 우리은행의 경우 저축은행중앙회와 업무협약(MOU)를 맺는 등 업권 외부와의 협력도 이뤄지고 있다.

◇ 일임업 준비 부족·과당경쟁 비판 등은 부담

이렇게 은행들은 풍부한 고객 접점이라는 강점을 내세워 총성없는 전쟁을 준비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증권업계와의 수익률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부담을 느끼고 있다.

전격적으로 투자일임업의 허용이라는 '과실'을 얻어내기는 했으나, 일임형 ISA의 계좌를 운영할 준비를 충분히 하기에는 여유가 부족하다는 것이 가장 큰 걱정이다.

일임형 ISA의 경우 운용 실력에 따라 우열이 확연히 갈릴 수밖에 없어 고객들의 이동을 활발하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은행이 투자일임업 자격을 새로 얻어야 하는 3월 말까지는 은행에선 일임형 ISA에 가입할 수 없다.

증권사에선 3월14일부터 신탁형과 일임형 ISA에 모두 가입할 수 있다.

따라서 고객 선점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ISA 출시 초기에 증권사와의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고 은행권은 우려하고 있다.

별도로 자격을 얻은 뒤 4월부터 곧장 일임형 ISA의 영업에 나설 수 있느냐도 걱정거리다.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들이 짧은 시간 안에 ISA를 준비하기란 절대 불가능하다"며 "전산시스템을 준비하는데 시간이 걸릴뿐더러 인력을 확충하거나 교육하는 데에도 시간이 올해 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올해 상반기 안에 투자일임업 관련 상품을 판매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투자일임업을 할 수 있는 파생상품 관련 자격증을 소지한 직원이 은행별로 300명 내외 정도밖에 되지 않아, 영업인력 확충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파생결합상품이 포함된 ISA를 판매하는 금융사 직원은 펀드투자권유와 파생상품투자권유 등 자격증 2개를 갖춰야 한다.

이에 은행권은 예정에 없던 파생상품투자권유자문인력 자격시험을 치르게 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 자격시험은 애초 올해 3·6·11월 총 3차례 시행할 예정이었으나, 요청에 따라 이달 28일 전국 6개 도시에서 특별히 추가로 치러진다.

과당경쟁에 대한 비판과 불완전판매 우려가 계속 제기된다는 점도 은행권에는 부담이다.

초기 고객 선점을 위해 은행권이 자동차, 해외여행권, 골드바 등 호화로운 경품을 내걸자 경쟁이 지나치게 높아지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줄기차게 나오고 있다.

몇몇 금융회사가 직원 1인당 100개 이상 계좌를 유치하도록 할당량을 설정하는 등 '묻지마 판매'에 열을 올린다는 판단에 금융당국은 최근 강도 높은 현장 감시를 예고하기도 했다.

과당경쟁의 여파로 불완전판매가 이어져 소비자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금융소비자원은 "필연적으로 수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금융사가 고객을 위험상품에 가입시킬 가능성이 크다"며 "제도 보완 없이 ISA가 시판된다면 불가피하게 불가입 운동을 벌일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고동욱 기자 sncwoo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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