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제 발등 찍는 투쟁노조…가입률 '뚝' 노동공급 독점, 임금인상 압박
노동조합의 등장은 산업시대 이전과 이후를 가른다. 18~19세기 영국에서 일어난 산업혁명 이전에 노동조합이란 것은 없었다. 가족 단위의 가내수공업이 전부였던 시기에 오늘날의 노동조합이 생길 수 없었다. 부유한 소수 사람들의 요구에 따라 생산하던 길드라는 기술공의 조합이 있긴 했으나 현재의 노동조합과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공장제 공업화 이후 등장

노동조합은 근대 이후 등장한 공장제 공업, 즉 산업혁명기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공장제 공업은 서로 모르는 군중이 거대한 협업 체계 속에서 노동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았다. 공장제 대량생산 체제는 더 많은 노동자를 필요로 했고 이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이 소득을 벌었다. 산업혁명 초기에 비록 작업환경은 열악했으나, 생활수준은 전(前) 산업시대보다 나아졌다. 다수의 노동자가 모이자 자연스럽게 결사체가 생겨났다. 산업현장에서 적지 않은 문제가 생겼고, 노동자들은 지식인의 지원 아래 노동조합운동을 전개해나갔다.

대표적인 인물이 카를 마르크스다. 그를 포함한 공산사회주의자들은 ‘자본가는 착취자며 자본은 노동의 적’이라며 혁명투쟁을 선동했다. 이들은 노동이야말로 가치를 만들어내는 유일한 것이며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이루자고 주장했다. 노동자와 노동조합은 20세기 내내 반자본, 반기업 투쟁을 벌였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노동조합 역사는 이처럼 오래됐다. 오래된 만큼 노동투쟁력이 강하기로 유명하다.

노동3권·유니온숍 쟁취

힘이 세진 노동조합운동은 20세기 중후반에 들면서 법률로 더욱 권리를 인정받았다. 노동 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이 보장됐고, 법정근로시간이 점차 줄었다. 미성년자 노동 금지와 같은 노동인권도 폭넓게 보호됐다. 최저임금법이 생겼고, 개별기업노조 내 복수노조 인정, 산별노조 가입 등도 차례로 허용됐다.

노조에 가입한 사람만 고용하는 클로즈드숍과 채용 후 일정기간 내에 노조에 가입한 사람만 채용하고 가입하지 않으면 해고하는 유니온숍까지 쟁취했다. 노동조합은 노동시장을 쥐락펴락하는 노동 공급독점까지 손에 쥐었다. 이처럼 노동운동이 폭넓게 인정된 이유는 노조를 통해 이직을 낮추고 생산성을 높여 경제를 성장시키는 데 있었다.

하지만 과하면 모자람만 못하다고 했던가. 노동조합은 타락하기 시작했다.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하듯 노동조합도 같은 길을 걸었다. 주체할 수 없는 힘은 회사를 죽일 만큼 많은 것을 요구했고 불법투쟁, 폭력투쟁, 정치투쟁으로 한계를 넘었다. 미국 GM자동차회사 노조는 퇴직자를 위해 100조원의 보험료를 대신 납부할 정도로 강했다. 영국 철도노조 등 국영기업 노조는 영국산업을 마비시킬 정도로 강했다가 대처 영국 총리의 원칙대응에 의해 진정됐다.

노조의 타락…무소불위 정치투쟁

이런 상황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강성노조는 매년 정기적으로 파업을 해오고 있다. 노동자의 권익 보호와는 무관한 민중총궐기라는 정치투쟁에 몰입해 해당 기업과 그 밑에 줄줄이 딸린 중소기업의 생존을 위협했다. 대법원 재판으로 번진 발레오전장 사건도 불법투쟁, 정치투쟁에 멍든 기업을 노조원들이 살리려 한 몸부림에서 빚어졌다.

이러다 보니 노조에 대한 신뢰도는 노동자들 사이에서 뚝뚝 떨어졌다. 미국은 35%까지 올랐던 노조조직률이 지난해 11%를 겨우 유지했다. 공공노조의 노조조직률 35~40%를 제외하면 순수기업노조 조직률은 6%대밖에 안 된다. 영국, 일본, 네덜란드도 마찬가지다. 한국도 1989년 20%에 육박했지만, 최근 10% 수준으로 급락했다. 한국의 노사분규 건수는 1987년 3749건에 달했다가 노조조직률의 하락과 함께 최근 100건 안팎으로 줄었다. 이는 노조가 외면받으니 분규도 줄어든다는 의미다.

노동 독점…임금인상 압력

노동조합에 대한 비판은 노동 공급을 독점한다는 데 있다. 노조는 노동독점권을 이용해 임금 인상을 주도한다. 노조가 파업을 통해 노동 공급을 중단하면 회사로선 대항할 수단이 없다. 회사 측은 직장폐쇄 조치를 취할 수 있으나,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하도급업체와 납품업체의 피해까지 고려하면 노조 요구에 응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올라간 임금은 사실 노동의 시장가격을 초월한다. 경제시간에 배운 것처럼 가격은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 노조 압력에 굴복한 높은 임금은 다른 사람을 실업 상태로 만든다. 임금이 시장균형 가격보다 높아진다면 기업은 더 고용할 여력이 없을 게 뻔하다. 노조원에게는 은혜지만, 실업자에겐 재앙인 셈이다.

1면에서 얘기된 발레오전장 노조는 투쟁 일변도인 금속노조와 작별해야만 회사와 일자리를 보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민노총 등 노동조합이 제 역할을 잊고 민중총궐기와 같은 불법 정치투쟁에 머무는 한 제2 발레오전장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