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김재수 aT 사장 "춘란 경매로 1조 시장 열어…'먹는 농업'서 '보는 농업'으로 바꿀 것"
한국의 난(蘭) 애호가는 50여만명. 하지만 그동안 난을 전문 거래하는 공식 시장은 열려 있지 않았다. 난에 관심이 있는 사람도 적정 가격이 어느 정도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김재수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사장(사진)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 춘란(春蘭)에 대해 최초로 제도권 경매를 시작했다.

법정도매시장인 화훼공판장에서 춘란이 거래되자 가격이 투명해지고 유통 과정의 신뢰도도 올라갔다. 김 사장은 “지하에서 비공개적으로 거래되던 것을 양지로 끌어올려 농업 범위를 넓힌 것”이라며 “한국에서 난을 대중화해 새로운 소득작목으로 육성하면 농가소득이 올라갈 뿐만 아니라 수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춘란 경매제도가 도입된 2014년 이후 1년 만에 춘란 거래가격은 30~40% 올라갔다. 주부 및 직장인 사이에선 ‘난테크’가 유행했다. 춘란 경매가가 1억2000만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김 사장은 기존의 논·밭농사 등 전통적인 농업만으론 더 이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고 본다. 춘란 시장처럼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새로운 농업 시장을 열어줘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시장을 만들어준 지 1년 만에 국내 춘란 가치가 크게 뛰었던 것처럼 더 이상 ‘배 채우는’ 농업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며 “전통 농업만을 바라보던 기존 시각에서 벗어나 새로운 농업 시장을 만들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농업의 범위를 넓히겠다는 김 사장을 지난 24일 서울 양재동 aT센터 비즈니스 라운지에서 만났다.

▷아시아에서 최초로 춘란 경매제도를 도입했습니다.

“한국 춘란의 전통적 가치를 상품화할 경우 연간 1조원 이상의 부가가치를 낳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이전엔 공식적인 시장이 없어 암암리에만 거래됐습니다. 부가가치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겁니다. 춘란 시장이 자리잡으면 생산을 규모화해서 국내 원예산업을 키울 수 있습니다. 인기 품종은 중국이나 일본 등에 수출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한국 농업이 언제까지 쌀농사만 짓고 소, 돼지만 키울 수는 없지 않습니까. 배 곯던 시절에서 다이어트하는 시대로 상황도 바뀌었고요. 이제는 ‘먹는’ 농업에서 ‘보는’ 농업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합니다.”

▷보는 농업이라면 어떤 것입니까.

“관상용 춘란 시장처럼 농업의 새로운 가치를 발굴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전까지 전체 농업이 100%라면 생산이 80%였습니다. 나머지 20%가 가공 저장 유통 수출 등이었지요. 한국 농업정책도 생산 증대 정책에만 초점을 맞춰왔고요. 하지만 이 8 대 2 비율을 이제는 완전히 뒤집어야 합니다. 생산은 20%고 가공 저장 유통같이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과정에 80%의 힘을 줘야 합니다. 농작물의 기능성 성분을 이용한 약재, 신소재 개발도 가능합니다. 관련 산업을 도와주겠다며 괜한 규제를 만드는 경우도 많은데 자연스럽게 시장이 형성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으로 족합니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등 시장 개방으로 한국 농업이 위기란 우려도 많은데요.

“그럴수록 한국 농업의 경쟁력을 더 찾아내야지요. 중국 재료를 들여와서 한국에서 가공할 수 있습니다. 이 가공식품을 다시 수출하는 고도화된 가공무역 구조가 적합합니다. 중국 인건비 수준이 올라가면서 앞으로 인건비 경쟁력에선 중국과 큰 차이가 없어질 겁니다. 결국 승부는 가공식품 품질과 물류 비용에서 납니다. 해외 업자들이 한국 농식품을 사갈 수밖에 없도록 해야 합니다. ”

▷어떻게 가능할까요.

“예를 들면 신흥국은 금리가 높은 곳이 많아요. 한국이 저금리로 현지 수입업자에게 대출해주면 업자들은 더 적극적으로 한국 농식품을 사들이게 될 겁니다. 그러면 현지인들도 시장에 나온 한국 농식품과 친숙해집니다. 이런 식으로 현지 업자들이 한국 농식품을 수입하지 않고는 못 배기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수출입은행과 현지 수입업자에게 자금을 대출해주는 방안을 놓고 협의 중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현지 정보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 기업도 많습니다.

“그 문제도 해결해야 합니다. 농식품을 수출하려면 검역 문제 등 현실적인 장벽이 높은데 정확한 현지 정보를 주는 곳은 없는 상황입니다. 이 같은 전문 수출 정보의 데이터베이스(DB)화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서울 양재동 aT센터에 비즈니스 라운지도 세웠습니다. aT 본사가 지난해 나주로 이전했는데, 농식품 수출업체는 수도권에 있는 곳이 많지 않습니까. 관련 업체나 농업인들이 언제든 와서 다양한 농업 자료를 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농업정보 서비스센터 개념인 거죠.”

▷aT센터 안엔 학생들이 직접 운영하는 식당도 있는데요.

“그 식당을 에이토랑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외식 창업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실제 창업 전 미리 경험을 해볼 수 있도록 공간을 대여해준 겁니다. 요즘 식당 창업에 뛰어들었다가 실패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대부분 준비나 경험이 부족한 탓에 그렇습니다. aT는 공간과 주방시설만 대여해주고, 창업을 앞둔 학생팀이 3주씩 돌아가며 식당 운영을 하게 합니다. 식당 창업 전에 원재료는 어떻게 줄이고, 고객은 어떻게 유치하고, 서빙은 어떤 식으로 진행하는지 직접 부딪혀가며 배울 수 있습니다. aT센터를 시작으로 지역에도 이런 창업준비공간이 다양하게 생긴다면 청년들의 꿈과 희망을 담을 수 있는 창업 생태계가 구축되지 않을까요.”

▷식당 창업만 지원하나요.

“꽃 문화를 음료문화와 접목한 카페도 마련할 계획입니다. 요즘 국내 화훼농가들이 참 힘듭니다. 꽃을 사는 사람들은 계속 줄어들고, 김영란법 시행으로 일정 금액 이상의 화환 보내는 것도 일부 제한됩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려면 꽃에 아이디어를 접목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내야 합니다. 꽃을 이용해 창의적인 사업을 할 사업자들을 공모했는데, 26개팀이 응모했습니다. 이 중 최종 한 개팀을 선정해 aT센터 내 공간을 빌려주고 사업을 지원할 계획입니다.”

▷농산물 유통구조가 복잡하다는 지적이 많은데요.

“aT가 새로 시작한 스마트스튜디오 사업이 농산물 유통구조를 바꾸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할 겁니다. 지금은 보통 소비자가 10만원을 내고 농산물을 사면 농민은 5만5000원밖에 못 받습니다. 4만5000원이 유통 비용입니다. 스마트스튜디오는 중간 유통과정을 없애고 농민이나 식품업체가 바로 소비자와 연결해 상품을 홍보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곳입니다. 원가 수준으로 홍보 동영상도 제작해줍니다. 사실 이런 지원프로그램이 없으면 품질 좋은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민이라도 홍보에 애로가 많습니다. 스마트스튜디오를 이용해 농민이 홍보 동영상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블로그 등에 올려 소비자에게 알리고 판매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기존 유통구조 자체를 바꾸긴 역부족일 것 같습니다.

“모든 농산물 유통이 직거래될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새로운 모델은 기존 유통구조에 분명 자극을 줄 겁니다. 직거래가 늘어나면 도매시장 같은 일반적인 유통라인에 들어가는 물량이 줄어들지 않겠어요? 물량이 줄어들면 시장 참여자도 여러 문제를 개선하려고 노력하게 될 겁니다. ”

▷올해 aT의 목표는 뭡니까.

“글로벌 농식품전문 공기업으로서 입지를 다지는 겁니다. 수출 농업과 국내 농업의 투트랙 정책을 펼쳐 농업을 미래 성장산업으로 키워나가는 데 일조하겠습니다. 국내 농업은 생산뿐만 아니라 가공, 유통 등 생산 이후의 단계까지 첨단화, 고도화가 필요합니다. 수출농업도 권역별 유망품목을 개발하고 해외마케팅에 힘을 쏟아야지요. 세 가지 새로운 사업전략을 ‘3신(新) 정책’이라고 이름 붙이고 추진해 나가려고 합니다. 신 수출전략, 신 유통 패러다임, 신 수급관리시스템이 그것입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