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김자영 씨(54)는 매달 25일 은행 창구에 들러 미국에 유학 중인 아들에게 생활비 2000달러를 송금한다. 그런데 절차가 복잡한 게 늘 불만이다. 송금할 때 수취인·수취계좌·주소 등을 적어야 하고 받을 때도 본인확인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수수료도 2만원가량 내야 한다. 국내 은행과 해외 은행 간 전산처리 때문에 돈을 보낸 다음 1~3일 뒤에야 찾을 수 있는 것도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다.

은행들이 복잡한 기존 해외송금을 대신할 핀테크(금융+기술) 기반의 간편 송금서비스를 속속 내놓고 있다. 스마트폰 등으로 송금 신청을 할 수 있는 것에 더해 현지 은행계좌가 없어도 휴대폰 번호만 있으면 실시간으로 돈을 찾을 수 있는 서비스까지 나왔다. 다음달부터는 은행이 아니라 카카오 등 정보기술(IT) 기업도 해외 송금을 할 수 있게 돼 핀테크발(發) 해외 송금 서비스 경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불붙은 '핀테크발 해외송금' 전쟁…휴대폰으로 돈 보내면 해외서 5분내 찾는다
간편 해외송금 내놓은 은행들

KEB하나은행은 23일 상대방 계좌번호 없이 스마트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해외에 돈을 보내고 찾을 수 있는 ‘1Q트랜스퍼’ 해외송금 서비스를 선보였다. 1Q트랜스퍼 앱(응용프로그램)을 통해 수취인 전화번호를 입력한 뒤 해외송금을 신청하면 5분 뒤 해외 수취인의 휴대폰으로 ‘송금 도착’이란 문자메시지가 보내진다. 수취인은 1Q트랜스퍼 앱으로 송금 내용을 확인한 뒤 하나은행 현지 지점이나 업무제휴를 맺은 현지 은행에서 돈을 곧바로 찾을 수 있다. 한번에 최대 1만달러까지 송금할 수 있다.

불붙은 '핀테크발 해외송금' 전쟁…휴대폰으로 돈 보내면 해외서 5분내 찾는다
KEB하나은행은 이 서비스를 필리핀에서 먼저 시작했다. 현지 은행 및 2000여개 전당포와 업무제휴를 맺고 해외송금 신청 후 5분 이내에 돈을 찾을 수 있도록 했다. 올해 안에 호주, 인도네시아, 중국, 캐나다 등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KEB하나은행 관계자는 “전당포를 이용하면 거래계좌 없이 신분증과 송금내역만 제시하면 365일, 24시간 돈을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서비스가 가능한 건 핀테크 덕분이다. 지금까지 해외송금은 국내 은행→중계 은행→현지 은행 등 세 단계를 거쳐야 했다. 하지만 ‘1Q트랜스퍼’ 서비스는 중계 은행, 현지 은행을 거치지 않고도 돈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수수료도 확 낮췄다. 은행창구에서 2000달러를 보내려면 지금은 4만원가량의 수수료를 내야 한다. 1Q트랜스퍼를 통하면 1만~1만2000원 정도의 수수료만 내면 된다.

다른 은행들도 핀테크 기반의 해외 송금 시장에 뛰어들었다. 우리은행은 최근 모바일 전문은행 위비뱅크를 통한 해외송금 서비스인 ‘위비 퀵 글로벌송금’을 내놨다. 중국 일본 인도네시아 등 10개국에 하루 최대 2000달러까지 송금할 수 있는 서비스다. 베트남 필리핀 스리랑카 네팔 등 4개국에 송금할 때는 받는 사람 이름만 입력하면 거래계좌 없이도 현지 제휴은행에서 곧바로 돈을 찾을 수 있다. 송금 수수료도 없다. 전신료(8000원)만 받는다. 신한은행 역시 지난해 말 모바일 전문은행 써니뱅크를 통해 ‘간편해외송금’ 서비스를 시작했다. 신한은행 거래계좌가 없는 소비자도 써니뱅크 앱을 통해 해외송금(하루 최대 2000달러)을 할 수 있는 핀테크 기반 서비스다.

은행 ‘해외송금 독점’ 깨진다

은행들이 모바일 기반의 간편 해외송금 서비스를 내놓는 건 핀테크 기술의 발달로 시장 판도가 급변할 것이란 판단에서다. 국내 해외 송금 시장 규모는 약 7조원(2014년 기준)에 달한다. 유학 송금과 이주노동자의 본국 송금 등이 늘면서 매년 급증하는 추세다. 지금까지 해외송금은 은행이 독점해왔으나 앞으로 핀테크기업이 이 시장을 잠식할 것이란 게 은행들의 우려다.

이미 영국과 미국에선 은행을 거치지 않고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통해 해외송금을 해주는 핀테크기업이 대거 등장했다. 영국 핀테크기업 트랜스퍼와이즈(TransferWise)는 2014년까지 누적 기준으로 45억달러(약 5조원)의 해외송금 실적을 기록했다.

국내에서도 이르면 다음달부터 비은행 금융회사와 핀테크기업의 해외송금이 허용된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말 증권사, 보험사, 핀테크기업도 건당 3000달러 이하(1인당 연간 2만달러 이하)의 소액을 해외송금할 수 있도록 외국환거래법을 개정했다. 이에 따라 카카오 같은 IT기업도 자체적으로 해외송금 서비스를 내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태명/김주완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