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만큼 공부도 최선 다했죠"
“어렵게 유럽에 진출해 첫 경기를 뛰었는데 축구를 시작했을 때 같은 벅찬 감동이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그때 축구를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을 처음 했습니다.”

20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교정에서 만난 임윤택 씨(22·사진)는 자신이 축구를 그만두고 대학에 진학한 계기를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벨기에 프로축구 2부리그 AFC투비즈에서 활약한 임씨는 올해 입시에서 서울대 체육교육과에 합격했다. 서울대 학부에 프로선수 출신이 입학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고교 시절 임씨는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공격수로 성장할 재목으로 평가받은 유망주였다. 연령별 유소년 대표를 거쳐 축구 명문 경기 신갈고에 진학했다.

축구 선수로서 탄탄대로를 걷던 임씨는 고교 졸업 무렵 유럽 진출이 좌절되며 위기를 맞았다. 임씨는 “당시 독일 프랑스 등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테스트를 받았고 한 곳에서 입단 제의도 왔다”며 “원하던 조건이 아니라 거부했는데 아쉬움이 남는 선택이었다”고 털어놨다.

2013년 말 쓸쓸히 국내로 돌아와 한동안 방황하던 임씨는 이듬해 여름 다시 기회를 잡았다. 한국 스포츠마케팅 기업 스포티즌이 인수한 벨기에 투비즈 구단이 임씨에게 영입 제안을 한 것이다. 그해 겨울 벨기에로 떠난 임씨는 2015년 1월 벨기에 2부리그 시즌 후반기 개막전에서 좌측 공격수로 선발 기용돼 첫 경기를 치렀다. 그러나 필드에서 뛴 80분간 임씨가 느낀 것은 설렘과 환희가 아닌 실망이었다. 그는 “4월에 데뷔골을 넣었을 때도 잠시 기뻤지만 곧 허무함이 밀려 들어왔다”며 “고대하던 유럽에서의 축구였지만 내가 원한 것과 달랐다”고 말했다.

시즌을 마치고 5월 중순 귀국한 임씨는 축구에 흥미를 완전히 잃어버린 상태였다. 한 달여간 고심한 끝에 그는 같은 또래처럼 대학생활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7월1일 재수학원에 들어가 11월 수능시험까지 넉 달간 독하게 공부했다.

임씨는 “학원 선생님에게 모르는 것을 묻기 위해 화장실까지 따라가곤 했다”며 “밤 10시 학원 자습을 마치고 다시 집에 와 새벽 3시까지 책을 보는 등 하루 18시간 넘게 공부에 몰두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서울대 수시모집 수능 최저학력 기준을 충족해 최종합격했다. 그는 “공부가 축구보다 쉬웠다”며 “축구는 육체·정신적 컨디션은 물론 운에 따라 좌우되기도 하지만 공부는 한 만큼 성적이 나와 마음이 더 편했다”고 말했다.

1년 새 유럽리그 프로축구 선수에서 서울대생이 된 임씨의 꿈은 무척 소박했다. 그는 “축구를 하느라 다른 걸 해볼 기회가 전혀 없었다”며 “최대한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쌓아 내 장점과 재능을 살릴 일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