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소로스의 위안화 공격이 울리는 경고음
1992년 영국 파운드화가 고(高)평가된 상황에서 조지 소로스가 이끄는 퀀텀펀드가 주축이 된 헤지펀드 연합군의 공격이 시작됐다. 작전명은 ‘투기적 공격(Speculative Attack)’. 고평가된 파운드화 자금을 대량으로 빌린 뒤 이를 외환시장에서 매각해 달러화를 사들인다. 이렇게 되면 부채는 파운드화가 되고 자산은 달러화가 된다. 그런데 이런 움직임에 다른 투자자들이 동조하면서 수많은 세력들이 파운드화를 팔고 달러를 사들이게 되면 마침내 파운드화는 절하되고 달러화는 절상이 된다. 이제 파운드화로 표시된 부채 가치는 줄어들고 달러화로 표시된 자산 가치는 늘어나면서 자산과 부채의 차이, 곧 순자산만큼 이익이 발생한다.

물론 이 전략이 성공하려면 파운드화 가치를 유지하려는 영국 중앙은행(BOE)과 한판 승부를 벌여야 한다. BOE는 반대편에 서서 헤지펀드들이 파는 파운드화를 사들이고 자신이 보유한 달러를 팔면서 파운드화 가치 방어에 나섰다. 그러나 상황은 헤지펀드 연합군에 유리했다. BOE의 달러 보유액은 금방 동났다. 더 이상 달러를 팔 수 없게 되면서 BOE는 두 손을 들었다. 파운드화는 20% 정도 급격히 절하됐고 소로스는 열흘 사이에 약 10억달러를 챙겼다.

흥미로운 것은 소로스의 퀀텀펀드에 자금을 맡긴 고객 중에 영국 왕실이 있었다는 점이다. 영국 왕실 돈이 포함된 자금으로 소로스는 BOE의 외환보유액을 공격하는 투기적 공격을 감행했다. 영국 언론은 침묵했지만 뒤늦게 미국 언론들은 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대서특필하기 시작했고 소로스는 ‘BOE를 굴복시킨 사나이’가 되면서 세계적인 유명인사로 급부상했다. 이 전략을 처음 고안해 소로스에게 보고한 전략가는 퀀텀펀드의 2인자 스탠리 드루켄밀러였다. 드루켄밀러의 보고를 받은 소로스는 투자 규모를 열 배로 늘리라고 지시했고 엄청난 공격이 감행됐다.

헝가리 태생 유대인인 소로스는 런던경제대에서 수학한 바 있다. 그는 당시 철학을 가르친 칼 포퍼 교수의 가르침에 상당한 감명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카를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이론과 프로이트의 심리학 이론은 검증가능성이 없다는 점에서 사이비과학이라고 비판한 포퍼 교수의 저서가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이다. 소로스는 펀드매니저로 성공한 뒤 자신이 번 돈으로 당시 공산주의 체제 아래 있던 동구권에 ‘열린사회재단’을 설립하고 이들 국가의 체제 전환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지원했고, 이 때문에 개인적인 외교정책을 수행한 민간 외교관이라는 평가까지 받은 바 있다.

올해 86세인 소로스가 얼마 전 다보스포럼에서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의 위안화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다. 그는 “중국 경제의 경착륙은 피할 수 없다”며 포문을 열었다. 그는 중국 경제에 부실대출이 엄청나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막대한 부실 처리를 위해서는 위안화가 상당 부분 추가 발행돼야 하는데 이 경우 위안화 가치는 하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위안화에 대한 투기적 공격 전략이 실행되기 시작한 것을 보면 24년 전이 떠오른다. 달라진 점은 파운드화가 위안화로 바뀐 것이다. 이번 ‘작전’에 동참한 세력들 중에 드루켄밀러라는 이름이 낯익다. 그는 자신이 이끌던 듀케인캐피털을 2010년 청산한 뒤 개인투자자로 활동하고 있는데 이번 작전에도 참여하고 있다. 새로운 ‘용사’들도 많다. 헤이맨 캐피털매니지먼트의 카일 배스, 아팔루사매니지먼트의 데이빗 테퍼 등이다. 중국 당국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금융계의 악어’라고 비판도 하고 다양한 채널을 통해 경고를 날리고 있다.

지레 겁먹은 외국 자본들이 이탈하면서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소로스 공격이 일단은 먹히는 모습이다. 잘잘못을 논하기는 참 힘들다.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한국에 매우 힘든 상황이 닥칠 수도 있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한국은 고래 싸움에 등이 터지는 새우 수준에서 못 벗어난 느낌이다. 민간과 금융의 힘을 더욱 강하게 키워야 할 때다.

윤창현 < 서울시립대 교수·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장 chyun3344@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