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미국 오티스엘리베이터는 1999년 LG산전 엘리베이터 사업부문을 인수하며 오티스LG엘리베이터라는 이름으로 한국 시장에 진출했다. 2000년대 초반엔 50% 이상의 점유율을 기록하는 등 1위를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상호에서 LG를 떼어낸 2005년부터 점유율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2007년엔 1위 자리도 경쟁 기업에 내줬다.

조익서 오티스엘리베이터코리아 사장은 2014년 최고경영자(CEO)로 영입됐다. 오티스가 조 사장에게 CEO를 제의할 때부터 그는 오티스가 1위 자리를 내준 이유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가 내린 결론은 ‘한국 시장에 맞는 전략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조 사장은 취임 직후 미국 본사를 찾았다. 그는 본사 경영진을 만난 자리에서 “한국은 세계 3대 엘리베이터 시장인데 그만큼의 관심이 부족했다”며 “지금이라도 한국 시장에 맞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리고는 한국형 모델을 독자 개발해 시장에 내놓았다. 국내 공장의 규모도 확장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지난해 오티스엘리베이터코리아의 승강기 수주량은 전년 대비 30% 늘었다. 아직 1위 자리를 되찾은 건 아니지만 전환의 계기는 확실히 마련했다는 것이 안팎의 평가다.

오티스 최초 한국형 모델 개발

조 사장은 한국 시장 맞춤 전략을 세우겠다고 결정하자마자 경기 평택에 있던 공장을 충남 아산으로 확장 이전하겠다고 발표했다. 아산공장이 문을 연 뒤 국내 생산량은 약 110% 증가했다. 국내 생산량이 늘면서 소비자들이 원하는 시기에 엘리베이터를 납품하는 게 가능해졌다.

조 사장은 아산공장 완공과 함께 국내 독자 모델을 발표했다. 본사가 개발한 글로벌 베스트셀러 ‘젠투’ 모델을 기반으로 한국형 디자인을 가미한 ‘젠투 다이나믹’을 지난해 5월 선보였다. 젠투 다이나믹은 승강기 버튼이 탑승 기준 오른쪽 벽면에 있다. 기존 젠투 모델은 탑승자가 엘리베이터에 들어간 이후 뒤를 돌아 문 왼쪽에 있는 버튼을 눌러야 했다. 행동 속도가 빠른 한국인의 특성을 반영해 엘리베이터에 들어서자마자 버튼을 누를 수 있도록 했다. 한국 여성과 아이들이 엘리베이터 내부를 무섭다고 느낀다는 내부 조사 결과를 반영해 최대한 밝은 느낌의 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천장에서부터 벽면까지 일체형 LED(발광다이오드) 조명을 설치하고, 버튼에도 LED 백라이트를 적용했다. 재료도 일반 강판에서 컬러 강판(기존 강판에 특수 도료로 색을 입힌 특수 강판)으로 바꿨다. 조 사장은 이를 한국인 디자이너에게 맡겼다. 한국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서다.

젠투 다이나믹은 오티스엘리베이터가 1853년 창업한 이후 최초로 개별 국가에서 독자적으로 개발한 모델이다. 그만큼 본사를 설득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조 사장은 “본사를 설득하는 데만 약 1년이 걸렸다”며 “한국형 제품을 제작하면서도 글로벌 스탠더드(국제 표준)에 부합하도록 다양한 제안을 하고 검토해 결국 승인을 받아냈다”고 설명했다.

1년의 설득 끝에 출시할 수 있었던 젠투 다이나믹의 실적은 기대 이상이었다. 출시 이후 오티스엘리베이터의 판매량은 빠르게 늘고 있다. 오티스엘리베이터코리아의 지난해 수주량은 전년 대비 약 30% 늘었다. 조 사장은 “지금까지 오티스를 비롯해 대부분의 엘리베이터 업체는 공장이나 연구센터가 만든 제품을 ‘이것이 표준이니 구매하라’는 관점에서 공급했다”며 “이제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지역별로 어떤 취향을 갖고 있는지 등을 감안해 공급 물량을 변형시키는 노력을 하자는 차원에서 내놓은 게 젠투 다이나믹”이라고 설명했다. 오티스엘리베이터코리아는 올해부터 젠투 다이나믹을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파나마 등지에 수출할 계획이다.

원칙은 누구보다 엄격하게

[비즈&라이프] 조익서 오티스엘리베이터코리아 사장, 한국인 성격 맞춘 엘리베이터 개발…수주 30% 늘렸다
영업에 있어서는 파격을 선보인 조 사장이지만 원칙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엄격하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오티스엘리베이터 본사의 안전 기준을 한 단계 더 엄격하고 까다롭게 해 적용하고 있다. 오티스엘리베이터는 안전수칙 위반과 관련해 ‘2진 아웃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모든 작업현장에서 지켜야 하는 안전 수칙을 한 차례 위반하면 최소 1주일 정직을 당하고, 2박3일 과정의 안전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는다. 2차 위반 시에는 해고도 가능하다. 제품 관련 사고가 나면 해당 지역의 최고 책임자가 24시간 내 보고서를 작성해 본사로 보내야 한다. 조 사장은 “업계 최고경영자(CEO)들과 중국 출장을 갔을 때 사고가 발생해 저녁을 먹다 호텔 방으로 뛰어올라가 보고서를 작성한 적도 있다”며 “정말 ‘지독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오티스엘리베이터의 안전 기준은 엄격하다”고 설명했다.

조 사장은 여기에 몇 가지를 더 추가했다. 엘리베이터를 보수할 때 로프를 타고 수리하는 게 아니라 ‘비계(scaffold)’라고 불리는 가설물을 설치하고 그 가설물을 딛고 작업하도록 했다. 보수작업에 드는 시간은 두 배 이상 늘었지만, 로프가 끊어져 수리공이 다칠 가능성은 원천봉쇄됐다. 시행 초기 협력업체 직원들이 “이러면 오티스엘리베이터와 일을 못한다”고 할 정도로 반감이 심했지만, 조 사장은 “안전과 관련해서는 절대 양보가 없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조 사장은 “협력업체 직원들이 ‘이제는 로프를 타고 작업하는 걸 이해 못하겠다’고 할 정도로 정착이 됐다”고 전했다.

협력업체 직원들까지 참여하는 안전 교육 역시 조 사장이 도입한 제도 중 하나다. 오티스엘리베이터코리아 및 협력업체 전 직원은 매달 8시간 이상 안전 관련 현장 교육을 받아야 한다. 홍보 회계 등 현장과 직접 관련이 없는 부서에 근무하는 직원은 물론 조 사장 역시 교육 대상자다. 조 사장이 안전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이유에 대해 “사람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엘리베이터가 사람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평사원에서 시작한 영업통

조 사장이 제품 개발과 영업방식에 대해서는 유연함을, 원칙에 대해서는 엄격함을 강조하는 것은 ‘영업맨’으로 일했을 당시의 경험이 쌓인 결과다. 조 사장은 “영업사원에서 시작해 지금 사장의 자리까지 온 경험 덕분에 ‘고객이 먼저’라는 생각을 하면서 경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 사장은 1986년 LG하니웰에서 영업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영업담당 과장, 차장, 부장을 지냈다.

조 사장이 사석에서 자주 소개하는 일화가 있다. 영업담당 과장 시절 납품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불만 전화를 접수하자마자 현장을 찾은 일이다. 영업맨인 그가 현장에서 직접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지만, 조 사장은 “고객이 불편해하는데 누구라도 현장을 빨리 찾아야 한다”며 나섰다는 얘기다. 조 사장은 “본사 관련 부서에 직접 연락해 고장을 해결했는데, 그 고객은 무조건 나만 찾는 평생 고객이 됐다”며 “영업은 공급자의 시각이 아닌 고객의 시각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 사장은 한 달에 한 번은 무조건 지점을 찾는다. 영업맨으로 오랫동안 일하다보니 현장 직원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게 조 사장의 설명이다. 그는 “최소 한 시간씩 직접 회사 가치와 현재 상황 등을 공유하기 위한 브리핑을 한다”며 “브리핑 이후에는 무조건 지점 직원 전원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면서 그들의 얘기를 듣는다”고 설명했다. 회사 관계자는 “지점 직원 대부분이 ‘사장과 저녁을 함께 먹는 경험은 처음’이라는 반응을 보인다”며 “조 사장의 유연함을 보여주는 행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회사의 안전 원칙을 직원과 공유할 수 있는 기회기도 하다”고 전했다.

■ 조익서 사장 프로필

△1959년 서울 출생 △1985년 성균관대 전기공학과 졸업 △1986년 LG하니웰 입사 △2000년 존스콘트롤즈코리아 영업&마케팅 총괄 디렉터 △2001년 존스콘트롤즈코리아 사장 △2007년 캐리어 유한회사 사장 △2013년 캐리어 상업용 냉장부문 아시아총괄 사장 △2014년 오티스엘리베이터코리아 사장 조익서 사장 프로필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