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이 최근 소식지를 통해 “노조에 사외이사 1인 추천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보도다. 이 회사는 지난해까지 2년 연속으로 ‘조 단위’의 적자를 기록해 지역은 물론 나라 경제에까지 주름살을 지우고 있다. 이런 기업에서 뼈를 깎는 구조조정 결의가 들리는 게 아니라 때아닌 경영참여 요구가 들려오고 있는 것이다.

노동계의 이런 요구가 처음은 아니다. 노동계는 독일을 예로 들며 주요 사업장 단체협상에서 사외이사 추천권을 이슈로 하려는 중이다. 여기에 정치권이 편승해 노조의 사외이사 추천권을 입법으로 보장하려는 시도까지 벌어지고 있다. 여야를 합해 모두 네 건의 유사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독일 주식회사는 이해당사자 자본주의를 기초로 하고 있다. 그나마 전체 기업의 1%만이 주식회사이고 나머지는 이런 의무가 없는 유한회사들이다. 독일 주식회사에는 이해당사자 대표들이 참여하는 감독이사회와, 경영자들이 참여하는 집행이사회가 있다. 감독이사회는 종업원 2000명 이상일 경우는 노사 동수로 운영한다. 감독이사회가 집행이사회 상위기관이지만 의사결정만 더디게 하는 옥상옥으로 변질하고 말았다. 이런 비효율이 1990년대 독일 경제 침체의 결정적 원인이 됐다는 것이 ‘하르츠 개혁’의 진단이었다. 최근 폭스바겐 사태에서도 드러났듯 의사결정이 느리면서 책임지는 주체도 분명찮은 게 독일식 경영구조다.

한국은 독일과 달리 영미식 주주자본주의 시스템이고, 전체 기업의 95%가 주식회사다. 대주주에 대한 견제 장치는 너무 강화돼 있어 투자가 말라버린다는 정도다. 사외이사는 모든 이해당사자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 독일에서도 실패한 제도를 경영난에 처한 기업에서 도입하겠다고 하니 이런 시대착오가 또 어디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