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화석유로 불리는 LPG가 국내에서 자동차 연료로 사용된 때는 1960년대 후반이다. 특히 한국에서 LPG가 본격 생산된 이후 개조를 통해 자동차에 사용됐고, 이후 1970년대 LPG 연료가 택시에 사용될 수 있도록 법적 정비가 완료된 후 1982년 자동차회사가 LPG 전용 엔진을 처음 만들어 판매했다. 그러니 한국 내 LPG자동차의 역사도 벌써 50년이 훌쩍 넘은 셈이다. 덕분에 LPG엔진 기술은 한국이 글로벌 최고 수준으로 평가된다. 이에 본지는 그간 국내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LPG자동차의 한국 내 역사를 정리해 보려 한다<편집자>.

올림픽을 전후해 등장한 중형 LPG 승용차는 영업용 외에 국가유공자, 장애인, 지치단체 등으로 사용이 확대돼 갔다. 그러자 기아차는 1994년 국내 처음으로 1t 와이드 봉고 LPG와 하이베스트 LPG를 내놨다. 이들 차종에는 포텐샤에 적용된 2,200㏄ 엔진이 탑재돼 최고 94마력을 발휘했다. 또한 가스누출에 대비한 긴급 가스차단장치가 마련돼 운전자를 안심시켰다. 게다가 비슷한 시기 정부는 환경오염을 이유로 소형차의 경유 사용을 억제하는 정책을 준비했다. 국내에 소형 경유 승용차가 사라진 것도 1995년 시행된 소형 경유차 판매 금지 조항 때문이다.

[연재]한국 LPG자동차의 역사⑤-LPG 미니밴의 시대

경유승용차 확대 제한은 15인승 이상 중대형 승합차 및 1t 이상 중대형 화물차, 그리고 견인차와 특수차 등에도 LPG 사용이 확대되는 계기가 됐다. 아시아자동차가 타우너를 내놨고, 현대차도 1t 포터에 LPG를 얹었으며, 대우자동차 또한 중대형 화물에 LPG 엔진을 앞 다퉈 올렸다. 특히 경유에서 배출되는 오염물질의 심각성이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경유를 LPG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했다.

이런 논란 속에서 정부는 1997년 비로소 자가용 승용차에도 LPG 엔진을 허용하는 방안을 확정했다. 자동차관리법에 따른 LPG 사용 제한 고시를 없애기로 결정한 것. 그러자 당시 현대자동차서비스(現 현대모비스)는 LPG 시대가 활짝 열릴 것에 대비해 일본 미쓰비시 샤리오 기반의 LPG 전용 7인승 승합차 싼타모를 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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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3만원에 등장한 싼타모 LPG는 휘발유 가격의 30%에 불과한 LPG 가격을 등에 업고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현대차 또한 월 평균 휘발유차 대비 11만원의 연료비를 아낄 수 있다는 광고를 내보내며 경제적인 미니밴에 초점을 맞췄다.

물론 싼타모는 LPG 이전 휘발유가 먼저 출시됐다. 하지만 1997년 LPG 엔진이 등장하면서 수요는 거의 LPG에 집중됐다. 그런데 LPG 엔진의 등장은 필연적이었다는 게 당시 언론의 분석이다. 1997년 8월 발간된 자동차 월간지 카테스트(Cartest)의 싼타모 플러스 LPG 시승기를 보면 그 배경이 잘 나와 있다. 내용은 아래와 같다.

"싼타모 LPG는 싼타모 휘발유 기름 값에 질린 고객들이 마련한 자구책의 결과다. 싼타모 휘발유는 LPG차로 구조변경 허가 신청서를 내고 가스 안전교육을 받으면 된다. 그리고 싼타모는 승합차여서 LPG차 판매가 가능하고 개조업체를 통한 개조도 된다. 싼타모 차주들은 개조를 선택했다. 하지만 LPG차로 개조된 뒤 애매한 문제가 몇 가지 생기게 된다. 그 하나는 건교부에서 액화석유가스 관리 규정에 의해 승합차인 싼타모의 LPG 장착을 허가하면 화물 수납공간에 LPG 탱크를 달게 된다. 개조비는 100만원 정도로 무척 비싼데다가 화물칸을 아예 쓰지 못하게 될 뿐 아니라 뒷 해치를 통한 승하차 및 풀플랫 시트의 활용도 힘들어진다. 또 개조업자의 수준도 일정치 않아 안전관리 문제 등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이런 잠재수요 대한 기대 및 싼타모의 이미지 제고를 위해 싼타모 LPG가 등장했다(월간 카테스트 1997년 8월호)"

현대차의 예상은 적중했다. 싼타모는 외환위기에 따른 급격한 경제위기와 맞물려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1997년 1~7월 싼타모 판매는 9,647대였는데, 전년과 비교하면 23% 증가했다. 더불어 7월 한달에만 1,910대가 판매돼 전년 대비 109% 늘었다. 물론 이유는 LPG의 가세다. 휘발유 대비 30%에 불과한 연료비가 서민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연재]한국 LPG자동차의 역사⑤-LPG 미니밴의 시대

그러자 기아차도 이에 질세라 카렌스(Carens) 미니밴을 시장에 곧바로 투입했다. 특히 주력은 1,800㏄급 LPG 엔진을 탑재하고, 가격을 1,320만원에 책정했다. 1999년 6월3일 신차발표 하루에만 3,700대가 계약됐을 만큼 주목을 받았다. 카렌스는 기아차가 준중형 세단인 세피아 플랫폼을 활용해 개발한 미니밴으로, 스티어링 칼럼 시프트 방식이 적용됐다. 현대차 싼타모를 정조준하며 승승장구, 2000년에는 연간 판매 3위(8만4,089대)를 달성하기도 했다. 당시 1위였던 현대차 EF쏘나타가 11만2,512대였으니 LPG 엔진의 카렌스 위력은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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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G 미니밴 등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싼타모와 카렌스의 독주를 방치할 수 없었던 대우차는 1999년 9월15일 프랑크푸르트모터쇼에 미니밴 '레조(REZZO)'를 공개했다. 그리고 2000년으로 해가 바뀌자마자 국내 시판에 본격 나섰다. 2.0ℓ 가솔린과 LPG 엔진을 탑재했지만 역시 주력은 LPG였다. 이탈리아 디자인회사인 피닌파리나에서 스타일을 맡아 유럽형으로 인기를 끌었는데, 기아차 카렌스가 2000년 국내 판매 3위에 오를 때 레조는 출시 첫 해 단숨에 5위에 올랐을 만큼 각광받았다.

이처럼 LPG 소형 미니밴 외에 LPG 열풍은 현대차 트라제, 기아차 카니발 등 대형에도 이어졌다. 저렴한 자동차세와 LPG 연료 덕분에 미니밴은 국내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킬 만큼 확산됐다.

그러자 정부도 고민이 생겼다. LPG 확산에 따라 유류세 증가율이 둔화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수송용 LPG 가격을 최고 70%까지 올리는 방안을 추진했는데, 아예 7~10인승 RV에 LPG 엔진 사용 불허방침도 고려하고 나섰다.

이런 소식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완성차업계는 난리가 났다. 일단 소비자들이 먼저 LPG차를 출고해달라는 요청이 빗발쳤다. 혹여 모를 생산 중단을 우려한 요구였는데,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자동차회사는 정부에 정책 변경을 요청했다. 실제 1999년 10월22일자 경향신문에 따르면 당시 LPG승합차의 대기수요는 기아차 카렌스 4만9,000대, 카니발 1만5,000대, 카스타 1만대, 현대차 트라제XG 1만7,000대에 달했다. 따라서 정부의 LPG승합차 판매 중단은 자동차회사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정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듬해 7월, 정부는 액화석유가스(LPG) 가격 인상안을 발표했다. 그러자 RV 계약은 서서히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다. 기아차 카렌스는 하루 계약대수가 평소 600대에서 500대로, 카스타는 200대에서 150대로 감소했고, 대우차 레조는 하루 1,000대에서 700~800대로 줄었다. 정부의 연료 가격 정책에 따라 한 순간 정점을 찍었던 LPG자동차의 인기도 감소세로 돌아섰던 것이다. 그만큼 자동차 산업에 있어 정부의 연료 가격 정책은 시장이 요동칠 만큼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였다.(6회에 계속)

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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