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이백과 술 문화
‘마주 앉아 술 마시니 산꽃이 피네/ 한잔 한잔 또 한잔/ 나는 취해서 잘 테니 자네는 가게/ 내일 아침 술 생각나면 거문고 끼고 다시 오게(兩人對酌山花開 一杯一杯復一杯 我醉欲眠卿且去 明朝有意抱琴來).’

이백의 산중여유인대작(山中與幽人對酌)이란 시다. 은거한 친구와 만나서 술 마시는 평범한 소재를 시로 표현했다. 마시다가 졸리니까 내일 보자고 하는 쉬운 내용이다. 옛 선비들은 형식이나 내용면에서 두보의 시가 훌륭하다고 평했지만, 서민들은 이백을 사랑했다. “이태백이 놀던 달”이 우리 유행가에 나올 정도다. 왜냐? 쉽기 때문이다.

이백은 고독의 시인이다. 신분의 한계로 주류사회에 편입되지 못하고 항상 주변인에 머물러야 했다. 그래서 이백의 시에는 고독과 소외감이 깔려 있고 술 마실 때 달, 꽃 그림자 등이 자주 등장한다. 좀체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은 친구가 있다. 간만에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났나 보다. 행복감이 절로 배어 나온다. 이백이 즐거워하니 산꽃도 덩달아서 기뻐한다. 술 마시는 장면도 한잔 한잔에 역동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권하면서 시 한수, 아니면 노래 한가락 하는 것 같다.

술자리에 노래와 춤이 곁들여지면 흥이 배가된다. 불행히도 우리는 놀이문화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전통 창이나 춤, 흘러간 옛노래는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다. 그래서 술자리에 가면 학교에서 배운 게 쓸모가 없다. 폭탄주 위주의 술 문화도 놀이문화의 빈곤 때문이 아닐까.

이백의 술자리에 폭탄주는 없는 것 같다. 죽기 살기로 마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처음 만났거나 잘 모르는 사람과의 어색한 자리에서 술을 많이 마시게 된다. 짧은 시간 내에 친근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다. 그래서 접대 장소에서 독한 술과 빨리 마시기 위한 폭탄주가 필요하다. 그러나 지기를 만나면 술이 목적이 안 된다. 그냥 즐기고 공감하면 된다.

드디어 술이 거나하게 취하고 졸음이 온다. “오늘은 그만 마시고 내일 아침에 또 봅시다. 그리고 거문고 가져오는 거 잊지 마시오. 형씨 거문고 연주가 있어야 내 노래가 산다오” 하며 작별한다. 사귐과 헤어짐이 물같이 담박(君子之交談如水)하다.

술자리는 가벼워야 한다. 1차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굳이 2차, 3차를 갈 이유가 없다. 태양은 다시 떠오르고 오늘만 날이 아니다. 신입생 환영회 등이 다가오고 있다. 너무 많이 마셔서 불상사가 생기지 않았으면 한다.

김상규 < 조달청장 skkim61@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