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샌더스의 신혼 여행
그제 치러진 미국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예비선거)는 민주당으로선 큰 이변이었다. 버니 샌더스가 힐러리 클린턴을 20여%포인트 차이로 꺾은 것이다. 샌더스의 돌풍은 지난 1일 아이오와 코커스(인디언 추장들의 모임이라는 뜻으로 당원만 참여하는 선거)에서 클린턴에게 0.2%포인트 차로 아깝게 지면서 예고됐었다.

이제 예비선거가 시작된 것에 불과하고 이달 하순에는 네바다 사우스캐롤라이나 등 클린턴이 유리한 지역에서 선거가 예정돼 있다. 특히 12개 주가 동시에 실시하는 3월1일 ‘슈퍼 화요일’ 경선은 조직력이 강한 클린턴이 유리하다는 전망이 많다. 그러나 민주당 핵심에선 이번 두 차례 예비선거 결과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고 한다. 일부 호사가들은 클린턴의 낙마를 점치고도 있다. 특히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1월28일 민주당 하원의원 연찬회에서 “저울에 손을 올리지 않겠다”며 대선후보 경선에서 중립을 선언한 것을 두고 입방아들을 찧고 있다.

암묵적인 지지선언만 흘려도 당선가능성이 높은 클린턴을 두고, 그것도 자신이 국무장관에 임명했던 사람에 대해 ‘중립’을 선언한 것은 클린턴이 완주하기 어려운 숨은 악재가 나타났기 때문이라는 해석들이다. 수사가 종결되지 않은 ‘이메일 스캔들’이 큰 변수라는 풍문도 있다.

민주당으로선 그렇다고 35년간 무소속으로, 스스로 사회주의자를 자임해온 샌더스가 대선후보가 되는 것도 큰 부담이다. 샌더스에 대해서는 공화당이 언제든 색깔논쟁을 벌일 수 있다는 게 민주당 전략통들의 걱정이다. 공화당의 공격은 이미 시작됐다. 공화당 대선 후보 중 한 사람인 린제이 그레이엄은 지난해 10월 TV 토론회에서 샌더스가 신혼여행을 소련(현 러시아)으로 다녀왔다고 폭로했다. 그레이엄은 “샌더스는 몸은 돌아왔지만 정신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공격을 퍼부었던 것이다. 샌더스는 벌링턴 시장으로 재직 중이던 1988년 결혼했고 결혼식 다음날 사절단과 함께 소련 야로슬라블로 신혼여행을 겸한 출장을 다녀왔다. 샌더스는 도시 자매결연을 위한 출장이었다고 설명했지만 민주당 내부에서도 이 사실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민주당 핵심부에선 그래서 조 바이든 현 부통령을 출마시키는 방안이 진지하게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트럼프가 부담스러운 공화당도 ‘젊은 기수’가 더 유리할 것이라며 크루즈나 루비오를 밀기로 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트럼프와 샌더스 돌풍에 이어 전혀 다른 주인공들로 2막이 시작되는 모양새다. 미국 대선이 갈수록 흥미로워진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