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7년 판매된 현대차 아반떼의 길이는 4,420㎜였다. 그 당시 중형차였던 쏘나타Ⅲ는 4,700㎜로, 둘의 차이는 280㎜에 달했다. 그런데 너비는 아반떼가 1,700㎜였지만 쏘나타Ⅲ는 1,770㎜에 달해 실내에 앉으면 좁은 줄 몰랐다.

하지만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끝없이 펼쳐진 크기 경쟁에 따라 2016년에 판매되는 아반떼는 길이가 4,570㎜로 20년 전 쏘나타Ⅲ와 비교해 불과 130㎜ 적다. 하지만 휠베이스는 20년 전 쏘나타Ⅲ와 같은 2,700㎜다. 당시 아반떼의 휠베이스 2,550㎜가 시간이 흐르며 중형 수준에 도달한 셈이다. 실제 지금 판매되는 아반떼 너비는 1,800㎜로 20년 전 쏘나타Ⅲ의 1,770㎜보다 넓다.

[칼럼]자동차, 크기보다 맞춤형이 중요한 시대

이처럼 소비자 만족을 위해 커진 몸집은 자연스럽게 기술개발로 연결됐다. 체형은 키우되 효율을 높여야 했고, 너비는 좁아도 실내 공간은 이전보다 커야 했다. 그래서 자동차회사마다 경량화와 엔진 연소율 증대, 그리고 신소재 개발에 따른 부품 소형화에 매진했다. 2016년 아반떼 너비가 20년 전 쏘나타보다 좁아도 실내가 넓은 이유 또한 소형화된 부품 사용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기계적 연결은 전자장치로 대체되며 필요 부품이 감소했고, 덕분에 편의품목 확대에도 효율 향상의 기반이 조성됐다. 기술 개발에 따른 편의 및 안전품목이 추가돼도 무게가 내려간 비법(?)이기도 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크기 경쟁에 의미를 두지 않는 자동차회사가 많아지고 있다. 후속 차가 등장하면 어김없이 이전보다 무조건 커야 소비자들이 인정할 것으로 믿었던 신념(?)이 급속한 사회구조 재편에 따라 변한다는 방증이다.

대표적인 사회 변화 현상이 노령화다. 20년 전 자동차시대는 가구당 1대 보유가 확산되던 시절이어서 신차가 나오면 무조건 이전보다 커야 했다. 그래야 4인 또는 5인 가족이 함께 이동하기에 넉넉했다. 하지만 지금은 '1인 1대' 시대로 넘어가는 게 차이점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5년 12월 기준 국내 완성차 등록대수는 2,100만대에 달한다. 인구 2,57명당 1대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운전이 가능한 인구만 보면 '1인 1대' 시대에 근접해가고 있다. 그러니 자동차 이용 때도 크기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줄고, 오히려 너무 크면 부담된다는 소비자가 확산되는 중이다. 지난해 소형 SUV의 돌풍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는 셈이다.

[칼럼]자동차, 크기보다 맞춤형이 중요한 시대

이 같은 사회 현상의 변화는 자동차회사에 다양한 틈새 제품을 요구하고 있다. 이른바 '주력'이라는 명제 하에 틈새를 외면한 제조사일수록 점점 소비자와 멀어진다는 뜻이다. 시장 규모가 크지 않아도 맞춤형 틈새를 내놓는 제조사의 지배력이 점차 높아진다는 뜻으로도 읽혀질 수 있다. 최근 프리미엄 브랜드일수록 그물처럼 촘촘한 제품군을 마련하는 것도 결국 시대의 변화에 대처하겠다는 의도가 아닐 수 없다.

사실 지금까지 한국은 자동차 대중화에 치중해 왔다. 신차를 개발하면 글로벌 시장에서 연간 30만대를 팔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철칙처럼 자리잡았다. 결코 금전적 손해는 감수할 수 없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하지만 틈새 차종 확대로 금전적 손해는 최소화하되 가치를 높이는 무형의 이미지가 중요해지고 있다. '브랜드 가치'가 올라가면 대당 수익성을 높일 수 있어서다.

최근 전문가들이 한 목소리를 내는 조언이 바로 '한국차의 브랜드 가치 향상'이다. 그러자면 대중적인 30만대 외에 다양한 틈새 차종이 필요하다. 사회 변화에 따른 맞춤형 차종이 절실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자동차회사 관계자를 만나보면 아직까지 '연간 30만대'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들의 생각은 어디서 왔을까? 별로 어렵지 않다. 최고 경영진의 판단이 그대로 적용되는 게 기업 조직이니 말이다. 그러니 최고 경영진부터 '30만대'의 우물을 벗어나야 한다. 촘촘한 제품망 없이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것은 욕심일 수 있으니 말이다.

권용주 선임기자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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