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독일 폭스바겐그룹의 배출가스 조작 사건이 터져나왔지만 한국에선 폭스바겐 차량 판매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조작 사건이 불거진 직후인 지난해 10월 폭스바겐 판매량이 3111대로 주춤했지만 11월엔 7585대로 두 배 이상으로 늘었고 12월에도 5191대가 판매됐다.

같은 기간 미국에서 디젤 차량 판매가 급감한 것과는 대조된다. 폭스바겐그룹의 미국 시장 판매량은 지난해 8월 8688대에서 미국 정부가 불법 조작 사실을 발표한 9월엔 4205대로 줄었고 10월과 11월에도 각각 1879대와 201대로 감소했다. 급기야 지난해 12월엔 76대 팔린 것이 전부였다.

이 같은 천양지차는 소비자의 인식뿐 아니라 정부 태도에도 차이가 있기 때문이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미국 정부는 조작 사실이 확인된 폭스바겐의 유로5 디젤차 외에도 유로6 디젤차 판매를 금지했다. 물론 폭스바겐이 미국 시장에서 판매되던 유로6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가 폭스바겐을 상대로 최대 900억달러의 소송을 제기한 것을 염두에 둔 것이란 진단이다.

한국의 상황은 미국과 반대다. 폭스바겐은 조작이 확인된 유로5 차량의 판매는 중단했지만 유로6 차량은 계속해서 판매하고 있다. 여기에 큰 폭의 할인을 더하다 보니 판매가 줄지 않고 오히려 늘고 있다는 것이 자동차업계의 분석이다.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는 “한국 시장에서 판매 중인 유로6 차량은 배출가스 조작과 무관하다”고 밝혔다.

환경부도 유로6 조사가 마무리되기 전까진 판매 금지 조치를 내릴 수 없다고 전했다. 결과는 오는 4월께 나올 예정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조사가 진행 중인 차량에 대해선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판매를 허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는 이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우선 폭스바겐의 유로6 차량이 문제점을 안고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 희박질소촉매장치(LNT)와 선택적환원촉매장치(SCR)를 적용한 차량에서도 조작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폭스바겐이 조작 사실을 인정한 유로5 차량에는 배출가스재순환장치(EGR)가 탑재돼 있다. 유로6에는 이보다 배출가스 저감 기능이 뛰어난 LNT와 SCR이 들어가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미국에서는 LNT·SCR이 장착된 모델이 문제가 됐다”며 “결국 유로6도 조작하지 않았다고 단정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추후에 문제가 확인되면 그간 차량을 구매한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며 “한국 정부도 미국처럼 선제 대응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