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믿는 구석
‘믿는 구석’이란 말이 있다. 유사시에 나를 도와주거나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을 뜻한다.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보험과 비슷하다. 큰 위기나 사고가 생기더라도 경제적으로 든든하게 받쳐줄 수 있는 보험이 있다면 믿는 구석이 있는 것이다.

믿는 구석이 있으면 일단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다. 두려움이 없어지면 도전정신이 생긴다. 도전이 성공하면 큰 성과로 나타날 수도 있게 된다. 개인의 큰 성과가 사회 발전으로 이어지는 것은 물론이다.

반대로 믿는 구석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 미래를 보장할 수 없으니 뭔가 도전하기 어렵다. 어떤 선택지가 왔을 때 보수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항상 불안할 것이다. 불안이 지나치면 비관적이고 염세적인 마음도 생긴다. 이는 곧 사회 전체적으로도 건강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한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에겐 ‘믿는 구석’이 없다. 아이들은 입시 경쟁에서 뒤처지면 어떻게 될지 불안하다. 청년들은 취업에 실패하면 어떻게 될지 불안하다. 직장인은 퇴직 이후에 어떻게 될지 불안하다. 노인들은 여생이 어떻게 될지 불안하다. 모든 연령층에 걸쳐 사회 구성원 모두가 불안하다. 믿는 구석이 있는 사람은 불과 몇%에 지나지 않을 것 같다.

원인을 차치하고서라도, 과연 이런 상황을 누가 해결해야 할까. 결국 국가가 해결할 수밖에 없다. 국가가 믿는 구석이 돼줘야 한다. 개인이 각자 믿는 구석을 찾으라고 한다면, 국가가 국민의 믿는 구석이 되길 포기한다면 국민을 약육강식의 정글이나 사지에 두고 ‘알아서 생존하라’고 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2007년 기초노령연금과 장기요양보험이 만들어졌을 때 어르신들이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지금도 생생하다. 관련 입법 과정에 참여한 건 내 정치활동의 최고 성과로 자부한다. 얼마 되지 않는 돈이지만 퇴직 후에도 계속 지급될 수 있고, 자녀들의 돌봄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게 됐다. 노년층에 노후에 대한 믿는 구석을 지원했다.

믿는 구석의 다른 표현은 ‘희망’이다. 입시 경쟁에서 밀리더라도, 취업 전쟁에서 밀리더라도, 명예퇴직을 당하더라도, 부양자가 없더라도 누군가는 국민을 책임져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국민 모두가 희망을 갖고 살 수 있지 않겠는가. 그것이 바로 국가의 역할일 것이다.

강기정 <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okang@assembly.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