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개혁이 개악으로 질주하는 양상이다. 정부와 여당이 국회에 제출한 파견법 개정안에서 ‘금형·주조·용접·소성가공·표면처리·열처리 등 이른바 뿌리산업이라고 하더라도 대기업에는 파견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명문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는 것도 그렇다. 노동개혁 5법 중 그나마 일말의 개혁 시늉이라도 냈던 것이 기간제법과 파견법이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야당과 노동계가 반발한다는 이유로 기간제법을 철회한 데 이어 파견법까지 무력화하고 있다.

당초 정부와 여당이 뿌리산업에 파견을 허용하기로 한 데는 그럴 만한 사유가 있다. 자동차 조선 등에서 보듯 뿌리산업은 생산기반기술로 불리기도 했던 기초 공정산업으로 나무의 뿌리처럼 제조업의 근간을 형성하는 산업이다. 강한 제조업을 가진 나라 치고 이 분야 경쟁력이 취약한 나라가 없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런 배경에서 파견 허용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던 정부와 여당이 하루아침에 손바닥 뒤집듯 한다는 게 말이 되나. 뿌리산업은 주력산업 경쟁력에 그대로 직결되는데 그 주력산업을 이끄는 대기업과 전혀 무관한 영세 중소기업에만 파견근로를 허용한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제조업 현장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다. 기간제법 철회에 이어 파견법까지 이런 식으로 후퇴시키는 건 기업의 인력운용권을 사실상 다 앗아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는 한술 더 뜬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대기업이 중소 뿌리산업 업체들을 사내 하청이나 다단계 하도급 같은 방식으로 활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어이가 없다. 현행 파견법이 문제인 것은 정작 인력난에 시달리는 제조업에 파견을 금지하고 있어서다. 독일 일본 등 대부분 선진국은 파견근로를 전면 허용하고 있다. 노동 주무장관이 개혁을 하자는 건지 망치자는 건지 모르겠다. 고용부 생각이 이런 수준이니 노동개혁이 휘둘리는 것도 이상할 게 없다. 기간제법을 철회하고 파견법에서 후퇴하면서 고용 유연성을 위한 개혁은 다 날아갔다. 이제 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 산재보험법 등 노동 복지만 남게 됐다. 노동개혁이라는 말이나 쓰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