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칼럼] 일학습병행제, 능력중심사회로 가는 열쇠
작년 7월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청년고용을 제약하는 요인에 대해 기업, 근로자, 학계 전문가, 청년 구직자 등의 인식을 조사했다. 응답 주체별로 각기 다른 요인을 우선순위로 꼽았을 만큼 인식 차이가 컸다. 그럼에도 모든 주체가 높은 순위로 응답한 두 가지 요인이 있었다. ‘경기침체’와 ‘학력과잉 및 학교교육’이다.

우선 경기침체는 청년고용 문제에선 외생변수로 볼 수 있다. 경제지표들이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 경기순환 관점에서 보면 이를 통제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반면 학력중시 풍조에 기반한 고학력자 과다, 산업계 수요와 괴리된 교육 등은 꾸준히 지적된 문제이며 개선해 나갈 여지가 있는 과제다.

물론 학력이 중시되는 사회가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학력이 개인의 능력을 판단하는 척도로서의 타당성을 갖는다면 정보의 비대칭 조건 아래에서 훌륭한 신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학력주의 사회가 개인이 실제로 할 수 있는 일보다는 그 사람의 이른바 ‘스펙’을 더 중요시한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학력주의 사회에서는 필요 이상 더 높은 학력을 얻기 위해 경쟁하게 되고, 근로자가 보유한 스펙과 그 직업이 요구하는 능력 간의 미스매치(불일치)가 발생한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만으로는 발 빠르게 변화하는 산업계 수요를 충족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기업들은 인재를 채용할 때 점점 더 스펙이나 대학 ‘간판’을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고 있다. 기업 현장에서 인력을 양성하는 ‘도제식 훈련’이 주목받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독일이나 스위스 등 도제 제도가 정착한 국가는 그렇지 못한 국가들에 비해 높은 고용률을 보이고 있다. 현장학습을 통해 양성된 근로자가 대학 졸업 후 바로 입사하는 경우보다 경쟁력이 높아 기업의 만족도도 올라간다. 유럽에서는 기업의 25%가 도제 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참여하고 있다.

이런 도제 시스템을 한국 실정에 맞게 도입한 것이 ‘일학습병행제’다. 정부는 자체 훈련이 부담스러운 기업에 산업 현장에 기초한 맞춤형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훈련비와 담당자 수당 등도 지원하고 있다. 2014년에 본격 시작해 벌써 6000여개 기업이 참여할 만큼 호응도도 높다. 현장의 요구를 반영하지 못하는 학교 교육을 대신해 정부 지원을 받아 현장에서 적합한 인재를 직접 양성하는 것이 기업에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신용등급이나 근로조건 등 기본적인 요건을 충족하는 기업이 일학습병행제에 참여하고 있는 만큼 근로자도 일정 수준 이상 조건의 기업에 조기취업이 가능하다. 이후 자격 또는 학위 취득을 통한 경력 관리도 할 수 있다.

또 능력중심사회의 정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동시장 내에서 통용될 수 있는 직무능력 신호 기제로서의 객관적 자격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제출한 ‘산업현장 일학습병행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안에 따르면 국가 차원의 자격을 부여하도록 하고 있어 제도의 신뢰성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일학습병행제 정착을 위한 법률의 조속한 처리가 필요하다.

최근 채용단계에서부터 국가직무능력표준(NCS)을 기반으로 하는 인사관리 시스템을 도입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는 점도 능력중심이라는 화두와 맥이 닿아 있다. NCS는 산업 현장에서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기술·소양 등을 국가가 산업부문별·수준별로 체계화한 것이다. 직업에 필요한 역량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시스템을 통해 공정한 보상을 하고, 구성원들의 근로의욕을 고취하기 위해서는 일학습병행제가 마중물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동응 <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