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과 맛있는 만남] 에릭 월시 주한캐나다 대사 "정겨운 서울 광장시장 즐겨찾아"
주한대사의 소박한 일상

한국어 배우려 버스타고 어학당 다녀
환승 편리한 대중교통시스템 놀라워

아내 따라서 채식주의자로 변신
난 팥빙수 마니아…빙수기도 샀죠


언제나 열려있는 캐나다

난민 위해 공항 찾은 트루도 총리
외부인 환대 문화…국격 높였죠

한-캐나다 FTA 발효 1년 '긍정적'
양국간 실질 교역량 늘어나 이득


작년 2월 부임한 에릭 월시 주한 캐나다 대사(44)와 ‘맛있는 만남’을 하기로 했을 때, 그가 고른 장소는 서울 종로5가 지하철역 바로 옆 광장시장 한복판의 빈대떡집 ‘박가네 맷돌빈대떡’이었다.

다소 어수선하고 북적이는 전통시장 한복판이다. 입구에서는 사각 스테인리스판 위에 자작하게 깔린 기름을 먹으며 빈대떡이 지글지글 익었다. 누르개를 얹고 살짝 힘을 주면 ‘칙~’ 소리가 나며 김이 빠졌다. 그 소리에 자연히 침이 고였다.

허름한 실내 2층 벽 쪽에 자리를 잡은 그는 작년 4월부터 반년가량 고려대 한국어학당에 다니며 배운 인사말을 자연스럽게 읊었다. “안녕하세요, 캐나다 대사 에릭 월시입니다. 캐나다에서 왔어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후에도 간간이 우리말을 알아듣는 모양이었다. “아직 한국어를 잘 하진 못해요. 한 문장에 동사가 두 개 이상 나오면 잘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그래도 중국어만큼 어렵지는 않다고 했다. 어학당에 다닐 땐 주로 270번 버스를 탔다. 그는 “티머니 카드를 이용한 대중교통 환승시스템이 아주 편리하다”고 했다.

음식이 나오기 전, 동동주를 한 통 시켰다. 일단 ‘건배!’부터 외쳤다. 한 잔을 쭉 들이켤 무렵 호박전 고추전 등 모둠전 한 접시와 큼지막한 파전이 나왔다.

“동물 좋아하는 아내…울산서 유기견 입양도”

월시 대사는 채식주의자다. “고추전에 다진 고기도 들어 있는데 잘못 시킨 게 아니냐”고 걱정했더니 동석한 대사관 직원들이 웃는다. 이미 여러 번 이 메뉴를 시켜봐서, 어떤 걸 먹어도 되는 건지 잘 안다는 것이다.

“야채튀김이나 나물무침 등 상상하지 못했던 채식 조리법을 한국에서 많이 발견했다”며 그는 눈을 반짝였다. “채식주의자 친구 중엔 한국 시장에서 파는 다시마 튀각에 완전히 빠져서, 구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튀각을 다 사먹은 이도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울산에서 입양한 유기견 사진을 보여주고 있는 월시 대사.
지난해 울산에서 입양한 유기견 사진을 보여주고 있는 월시 대사.
채식주의자가 된 계기를 물었다. 환경문제 등의 이유를 생각했는데, 그저 “동물을 좋아하는 아내가 채식주의자가 되겠다기에 나도 같이 하기로 한 것뿐”이라고 답했다. 아내 루시 차이 씨는 지난해 울산까지 가서 유기견 두 마리를 입양했다. 둘 다 두 살배기 숫놈이다.

그는 아내와 함께 한국을 누비며 맛집을 찾아다니는 게 큰 즐거움이라고 했다. “최근엔 인천 차이나타운에 짜장면을 먹으러 갔고, 경기 부천 송내역에 있는 와플가게도 아내가 추천해서 일부러 찾아갔지요.” 광장시장을 처음 찾은 것도 아내가 목각 원앙인형을 사고 싶어해서였다.

“이태원은 좀 비싸고 광장시장이 싸다기에 왔는데 분위기가 아주 마음에 들었어요. 이태원과 달리 평범한 한국사람들을 위한 시장이어서 더 재미있어요.”

그는 쇠젓가락을 자유로이 썼다. “요새는 서양 사람들도 아시아 음식을 많이 먹어서 젓가락을 잘 써요. 그래도 캐나다에서 쓰던 나무젓가락보다 무겁고 얇은 한국 쇠젓가락이 좀 더 어렵네요.”

마침 빨간 쌀떡볶이가 나왔다. 엄지손가락만한 굵은 떡볶이다. 좋아할까 싶었는데 그가 망설임 없이 젓가락을 댔다. “매운 것도 좋아해요. 독일 베를린에 근무할 때도 한국식당을 종종 찾았지만, 떡볶이나 막걸리 같은 것은 잘 내놓지 않아서 아쉬웠어요.” 또 어떤 한국음식을 좋아하느냐고 묻자 즉각 “팥빙수!”가 튀어나왔다. 날이 더울 땐 서울 삼청동 일대를 산책하며 빙수전문점들을 정복(?)했다고 한다. “아예 집에 빙수기계를 사 놨어요. 여름엔 매일 해 먹었죠. 땅콩가루를 뿌려서 먹기도 하고, 과일빙수도 맛있어요. 북촌인가 삼청동에서 녹차와 수박을 넣은 빙수를 먹었는데 아주 끝내줬어요.” 깨알 같은 묘사에 웃음이 터져나왔다.

“트루도 총리 덕분에 캐나다 호감도 높아져”

뜨끈한 김이 올라오는 두부김치와 가지런히 쌓인 광장시장의 트레이드 마크인 ‘마약김밥(자꾸 먹고 싶어진다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 등장했다. 짭쪼름한 김밥도 맛있지만, 그는 두부가 특히 좋다고 했다.

< 1978년 그리고 2015년…난민에게 관대한 캐나다 > 저스틴 트루도 캐나다 총리(왼쪽)가 지난해 12월11일 캐나다 토론토 피어슨국제공항에 내린 시리아 난민 소녀에게 “집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말하고 있다. 토론토AP연합뉴스
< 1978년 그리고 2015년…난민에게 관대한 캐나다 > 저스틴 트루도 캐나다 총리(왼쪽)가 지난해 12월11일 캐나다 토론토 피어슨국제공항에 내린 시리아 난민 소녀에게 “집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말하고 있다. 토론토AP연합뉴스
캐나다는 주요 7개국(G7)에 들어가는 나라지만, 다른 나라와 대립각을 세우는 일이 드물고 국내 정치도 안정돼 있어 해외 미디어를 별로 타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는 얘기가 달라졌다. 작년 11월5일 취임한 저스틴 트루도 총리 덕이다. 자유분방하고 잘생긴 45세 정치인(아버지는 17년간 캐나다 총리를 지낸 피에르 트루도)은 폭발적인 인기몰이를 하며 10년간 집권한 보수당 정권 교체에 성공했다. 캐나다에서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인기인이다.

월시 대사는 “캐나다에 대한 호감도를 높이는 데 총리가 기여를 많이 하고 있다”며 웃었다. “캐나다에서 처음으로 남녀 동수 내각을 출범시켰는데 ‘캐나다인으로서 자부심이 느껴진다’는 이들이 많다”고 그는 전했다. 트루도 총리는 취임 후 한 달 만에 시리아 등 중동계 난민 2만5000명을 전격 수용하기로 결정하고, 이들을 맞으러 공항까지 나갔다. 월시 대사는 그것이 트루도 총리의 스타일이라기보다는 ‘캐나다의 힘’이라고 설명했다.

< 1978년 그리고 2015년…난민에게 관대한 캐나다 > 아기를 안은 베트남 난민 여성이 1978년 캐나다 몬트리올의 공항에 도착해 비행기에서 내리고 있다. 라디오캐나다인터내셔널 홈페이지
< 1978년 그리고 2015년…난민에게 관대한 캐나다 > 아기를 안은 베트남 난민 여성이 1978년 캐나다 몬트리올의 공항에 도착해 비행기에서 내리고 있다. 라디오캐나다인터내셔널 홈페이지
“캐나다는 외부 사람들을 기쁘게 환대하는 문화를 갖고 있습니다. 1970~1980년대엔 베트남 난민을 대거 받아들였지요. 사상의 차이나 경제 득실을 따지지 않는 편입니다.” 캐나다는 1975년 베트남 보트피플 5608명을 처음 수용했다. 국민 가운데 불만이 생기자 성인 5명 이상이 포함된 그룹이 후원자로 나서면 베트남인 한 명을 받아들이는 ‘매칭 제도’를 시작(1979년)했다. 이 제도로 1985년까지 11만여명에 이르는 베트남 사람에게 캐나다 여권을 내줬다.

지난해 1월1일부터 한국·캐나다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했다. 국내 경제인 가운데선 정권 교체로 캐나다 정부의 정책 기조가 바뀌는지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다. 월시 대사는 “새 정부가 기후협약을 지지하고 재정적자를 줄이려고 하는 등 새로운 정책을 발표했지만 다른 영역에선 보수당 정권의 정책을 거의 그대로 이어받았다”며 “걱정할 필요 없다”고 했다.

그는 양국 간 FTA 결과가 매우 긍정적이라고 했다. “지난해 무역규모가 FTA 전과 비슷하게 유지됐지만, 원유·가스 등 원자재 가격이 크게 떨어진 것을 감안하면 총량이 늘었다고 봐야 한다”며 “캐나다에선 농수산물 수출이 늘었고 한국에서도 전자제품 등을 많이 팔고 있어 둘 다 혜택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캐나다 FTA, 성과 내는 중”

월시 대사는 1972년생이다. 트루도 총리보다 한 살 적다. 차림이나 인상도 소탈해서 대사 자격으로 참석한 공식행사에 주최 측이 알아보지 못해 의전을 못 받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젊어서 되레 불편한 일도 있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서구권에선 40대 초반에도 장관이나 대사를 많이 하고, 한 국가를 대표하는 사람이니까 별 문제는 없어요. 그리고 마크 리퍼트(주한 미국 대사)보다는 내가 그래도 한 살 많은데요.” 그가 웃으며 눙쳤다.

도토리묵 무침이 나왔다. 부들부들한 도토리묵에 쑥갓 등 채소를 잔뜩 넣고 고춧가루와 양념을 얹어 무친 것이 동동주와 아주 찰떡궁합이었다. 바삐 젓가락을 놀리다가, 운동은 어떻게 하는지 묻자 그의 얼굴이 숙제를 못한 학생처럼 난처한 표정이다. “새해니까 이제 시작해야죠. 평창동 관저를 매각하고 거처를 남산 아래 주상복합건물로 옮겨서, 남산을 매일 걸을 수도 있는데 아직 한 번도 못 갔어요.”

시간이 제법 흘렀다. 못 다 먹은 안주들을 놓아두고 문 밖을 나서니 칼바람이 불어닥쳤다. 외투를 꼭 여미면서 그에게 한국에서 한때 큰 인기를 누린 아웃도어 브랜드 ‘캐나다 구스’의 거위털 코트 얘기를 하며 “너무 비싸다, FTA 했는데 값이 안 내린 것 같다”고 투덜댔다.

그는 “영하 10도 정도까지는 큰 차이를 느끼기 어렵겠지만, 영하 30~40도까지 내려가는 맹추위 속에서는 캐나다 구스가 확실히 다르다”고 열심히 설명했다. 마지막까지 자국 브랜드에 대한 애정어린 발언을 하는 품이 외교관다웠다.

월시 대사의 단골집 박가네맷돌빈대떡

[한경과 맛있는 만남] 에릭 월시 주한캐나다 대사 "정겨운 서울 광장시장 즐겨찾아"
지글지글 '야채녹두빈대떡…외국인도 '엄지 척'

서울 종로 광장시장 먹자골목의 대표 빈대떡집 중 하나다. 서울 종로5가역 8번출구로 나와 광장시장으로 들어서면 초입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한경과 맛있는 만남] 에릭 월시 주한캐나다 대사 "정겨운 서울 광장시장 즐겨찾아"
해물빈대떡(8000원), 고기빈대떡(8000원), 야채녹두빈대떡(5000원) 등이 주력 메뉴고 마약김밥·떡볶이(각 2인분에 5000원), 순대(7000원) 등 젊은 층 입맛에 맞는 분식 메뉴도 여럿 있다. 저녁엔 계란을 얹어 나오는 육회(1만2000원)가 인기다. 두부김치(1만2000원)·도토리묵무침(1만원)·해물파전(1만원) 등도 술 한잔용으로 제격이다. 빈대떡이 지글지글 기름에 지져지는 입구가 좁아 보이지만 안은 넓고, 3층까지 있어 앉을 자리가 넉넉하다. 한국인은 물론 외국인도 많이 찾는다. 페이스북(facebook.com/bindaetteog)과 트위터(twitter.com/parkganego) 계정도 운영한다.

주차는 광장시장 주변 길가에 토·일·공휴일 오전 10시~오후 5시까지(최대 2시간) 가능하다. (02)2264-0847

에릭 월시 주한캐나다 대사는

△1972년 캐나다 토론토 출생
△1994년 캐나다 맥길대 졸업 (정치학)
△1995년 캐나다 외교통상부에서 외교관 생활 시작
△2007~2010년 캐나다 외교통상부 동아시아국·북아시아국 과장
△2010~2015년 독일 주재 공사· 부대사
△2015년 2월~ 주한 캐나다 대사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