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혁신 아닌 '당근' 좇는 대학들
그것이 창조이건 진화이건 인류가 지구에 발을 딛고 살기 시작한 후의 기나긴 세월을 돌이켜 보자.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사람이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것은 도구의 사용인데, 태초의 인류가 수십만 년 넘도록 손에 쥐고 사용한 것은 큰 돌을 깨뜨려 얻어 낸 작은 돌멩이뿐이었다. 결국 인류사의 대부분은 지금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구석기 시대의 삶이다. 인류는 이렇게 긴 시간을 보낸 후에야 겨우 돌을 갈아 쓸 만한 도구를 만들 수 있었는데 이런 신석기 시대의 개막은 불과 1만~2만년 전이다. 엄청난 기술적 진보에 따라 인류는 식량을 생산하면서 부락을 이루기 시작했다. 위대한 신석기 혁명으로 사람들은 움집을 짓고 빗살무늬 토기를 만들며 편히(?) 살게 됐다.

신석기 혁명의 배경으로 꼽히는 것은 살면서 쌓은 경험과 지식이 이때부터 대를 이어 전달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신석기 시대에 이르러 인류의 평균 수명은 20세 정도가 됐으며 따라서 이 무렵에 처음으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기서 할머니의 역할은 중요해서 딸의 출산을 돕는 일, 가뭄과 같은 어려움에서 먹을 물이나 식량을 구하는 일에 큰 도움이 됐다. 이에 따라 할머니가 있는 가족들이 더욱 번성했고 할머니로부터의 지식 전달은 혁명적 발전을 유발했다.

그 후 지금부터 5000년 전,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수메르 사람들이 처음 쓰기 시작한 문자는 새로운 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점토판에 새겨서 남긴 중요한 문자정보는 가마에 구워 보관했는데, 이를 통해 이야기로만 전달되던 지식은 대를 이어가며 쌓이고 또 쌓였다. 인류가 청동기, 그리고 철기 시대로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지식이 문자를 통해 전달된 결과다.

다시 500년 전, 인쇄술 발명에 힘입은 책자의 대량 발간은 지식 전달 체계에서 일어난 또 한 번의 엄청난 혁명이었다. 종이와 인쇄가 있는 곳에서는 종교개혁과 같은 혁신이 일어났으며, 1687년 뉴턴이 발간한 《프린키피아》는 인류에게 자연과학이란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어 줬다. 지식을 가장 효과적으로 축적하고 전달하는 수단으로서의 책은 그 가치가 아직도 유지되고 있으며, 지난 수 세기 동안 책 읽는 사회가 진보한 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그런데 50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컴퓨터는 인터넷과 연결되면서 지식 전달의 새로운 수단이 됐다. 5년 전부터 보급되기 시작한 손 안의 컴퓨터, 즉 스마트폰은 세상을 아주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책 속에 있던 모든 지식과 정보는 디지털화돼 인터넷으로 들어갔으며, 이제는 아무 때나 어느 곳에서나 간편하게 필요한 지식을 얻을 수 있게 됐다. 최근에는 거의 모든 대학들이 ‘도서관’을 ‘학술정보관’으로 바꾸면서 장서(藏書)는 오히려 줄이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진행 중인 정보 혁명은 신석기 혁명, 문자 혁명 그리고 인쇄 혁명만큼 인류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정보 혁명 후의 미래 대학은 어떤 모습일까. 지식의 저장고 역할은 이미 많은 부분이 책에서 인터넷으로 옮겨 갔는데, 지금의 대학들은 그 역할과 기능을 그대로 유지할까. 어떤 미래학자의 이야기대로 오늘의 대학 캠퍼스는 조만간 모두 과거의 유적이 될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대학은 마땅히 근본적인 혁신을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요즈음의 우리 대학들은 학과 개편과 정원 감축을 목표로 교육부가 추진하는 3000억원 규모의 재정지원 사업인 ‘프라임(PRIME·산업연계교육 활성화사업)’과 ‘코어(CORE·인문역량 강화사업)’ 등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다.

무슨 일에도 당근이 필요한 경직된 구조의 우리 대학 사회가 아쉽다. 신청 자격에 등록금 동결과 같이 미래를 대비한 대학 혁신과는 전혀 관계없는 조건들을 내세운 교육부도 역시 아쉽지만 여하튼 대학은 바뀌어야 한다. 우리 대학 사회는 정보 혁명이란 쓰나미에 대비하는 근본적 대책을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

김도연 < 포스텍 총장 dohyeonkim@postech.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