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칼럼] 해운업 지원 시점을 놓치지 말아야
국가기간산업인 해운업이 바닥이 보이지 않는 불황의 늪에 빠져 있다. 해운업 경기를 나타내는 발틱운임지수(BDI)는 사상 최저치인 369까지 떨어져 북대서양에 짐을 실은 선박이 한 척도 없다고 할 정도다.

미증유의 위기 극복을 위해 각국은 민관공동으로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한국도 선박펀드 조성을 핵심으로 한 해운업 경쟁력 강화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지원 전제조건인 부채비율 400%는 업계 상황을 반영하지 않은 비현실적인 기준으로 국내 대다수 해운회사들이 지원에서 배제되는 상황을 초래하고 말았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 지원보다 기초체력을 갖춘 기업만 선별 지원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내 최대 선사인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조차 부채비율을 400% 이하로 낮추기 위해서는 최대 1조원의 자본을 확충해야 하는데, 이미 6조원에 이르는 고강도의 자구노력을 한 두 회사는 추가 자구 여력이 없는 상태다. 지금과 같은 불황에서 새로운 투자를 기대하는 것도 나무 위에서 생선을 구하는 격이다.

국책은행 등의 자금이 투자되는 사설 선박펀드가 대부분 외국 선사의 신규 선박 건조 활동을 지원하고 재무구조가 열악하다는 이유로 우리 해운회사를 지원하지 못하는 것은 아쉽다. 한국은 세계 최대의 조선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조선과 해운은 서로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일본처럼 해양수산부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가 참여하는 ‘해운조선정책조정위원회’를 구성해 20년 뒤를 내다보고 한국 해운과 조선이 어떻게 살아날지 그림을 그리는 정책이 필요하다. 이번을 계기로 정부의 해운업 지원 효과가 조선업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정책 지원을 함으로써 상생의 가치사슬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이번 지원책은 신(新)조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선박을 건조하는 데 2년 이상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 당장 유동성 위기를 겪는 국적선사들의 자금난을 해소하기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 금융위기 이후 지속된 세계적인 해운불황 속에서 국내 해운업계는 제대로 된 금융권 지원 없이 자체적인 유동성 해소 노력만 강요받아 왔다. 고금리 및 단기대여로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은 회사채 신속인수제마저도 지난해 끝나 올해 만기 도래하는 회사채에 대해서는 차환발행을 하지 못하는 등 국적선사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당장은 일시적인 자금난을 겪고 있는 해운회사에 유동성 지원이 우선돼야 한다. 해운회사에 대한 유동성 지원 정책은 독일, 프랑스, 중국, 일본 등에서 이미 성공사례로 증명된 바 있다. 그 결과 이들 국가의 해운회사들은 장기 불황 속에서도 경제성을 확보해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독일은 위기에 빠진 자국선사를 살리기 위해 유동성 지원뿐만 아니라 지분매입까지 해 자국선사를 보호하고, 결과적으로 함부르크의 허브항만 지위를 유지하도록 했다. 일본이 1960년대 초반 세계적인 해운경기 불황에 직면해 부채비율 수천%에 달하는 자국 해운업체를 구제하기 위해 시행한 해운정책도 주목할 만하다. 일본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시중이자를 부담하기 어려운 자국 해운업체에 정부가 대신 이자를 부담해주고 국책금융기관을 통해 신조자금의 90% 이상을 지원, 자국 조선소에 발주했더니 해운회사 재무구조가 건전해져 초대형 선사가 되고 결과적으로 조선업도 살릴 수 있었다.

봄에 새싹을 보려면 겨울철에 씨앗이 얼지 않도록 보호할 필요가 있다. 세계적인 해운불황이라는 힘든 겨울을 견디고 있는 해운회사에 대한 유동성 지원이라는 보호막을 우선 제공하고 장기적으로는 경기에 좌우되지 않도록 해운·조선의 통합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한종길 < 성결대 교수·한국해운물류학회 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