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오전부터 사흘간 1200여편의 항공기가 결항하면서 무려 9만여명이 제주에 발이 묶이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제주 전 해상에 풍랑특보가 발효돼 여객선 운항까지 끊기면서 그야말로 고립무원의 처지가 됐다. 다행히 어제 오후 3시부터 제주공항 운항이 재개됐지만 이런 엄청난 낭패를 당한 사람들은 이번 사태를 잊지 못할 게 분명하다.

폭설과 강풍 등으로 인한 항공기 운항 중단이 비단 제주만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국제자유도시를 지향하고 관광산업 도약을 외치는 제주특별자치도가 이번 사태로 상당한 타격을 입었을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지 않아도 1년 중 기상변화로 비행기가 아예 못 뜨거나 제시간에 뜨지 못하는 날이 50일이 넘는다는 제주다. 이번 사태로 사람들의 뇌리에 제주는 기상 등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언제 발이 묶일지 모를 곳이라는 이미지가 더욱 깊게 각인되지나 않을지 걱정스럽다. 제주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항공, 배 외에 대체 교통수단이 절실하다는 지적에도 눈을 돌릴 때가 됐다.

그런 점에서 무엇보다 아쉽게 와 닿는 건 해저터널을 통한 KTX 건설 계획이다. 호남~제주 간 해저고속철도 건설은 정치권에서 거론되다 2009년 교통연구원이 구체적인 구상을 내놓으면서 주목을 받았다. 그 뒤 이 계획은 대선공약으로 검토되기도 했고, 2014년엔 전라남도가 제3차 국가철도망구축계획에 포함할 후보 사업으로 건의하면서 또 한 번 눈길을 끌었다. 해저터널이 건설되면 서울에서 제주까지 KTX로 2시간30분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그때마다 이 구상을 막아선 건 다름 아닌 제주도민의 부정적 여론이었다. 신공항이 먼저라는 논리였지만 실은 제주 섬 고유의 정체성 훼손이 우려된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교통 접근성이 향상되면 제주의 자연환경이 훼손되고, 당일치기 관광이 늘어 숙박객이 감소할 것이라는 근본주의적 반대도 가세했다. 하지만 이는 어울리지 않는 폐쇄적이며 배타적인 구실들에 불과하다. 32년 만의 폭설 사태였다고 넘어갈 것이 아니다. 더 큰 제주를 위한 개방적 발상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