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저성장 탈출, 부가가치 창출 역량 높여야
한국 경제가 매우 그리고 상당 기간 어려울 것 같다. 공급 측면에서 보면, 잠재성장률이 빠르게 낮아지고 주력 산업의 기업들까지 이익창출 능력이 크게 저하된 가운데 부실기업이 늘고 있다. 수요 측면에서는 세계 경제의 침체로 수출 수요가 감소하고 가계 부채의 과잉과 임금 및 일자리 정체 등으로 내수도 취약하다. 미국의 금리 인상 등 요동치는 국제금융 환경 속에서 통화 당국이나 정부의 거시정책 선택지도 많지 않다.

이 와중에 한국 경제는 뚜렷한 방향성 없이 표류하고 있고 국가적인 경제운용 역량도 낮아지고 있다. 정부 정책은 단기적인 경기 대응과 이벤트성 정책이 많고, 막무가내식 정치는 구조개혁의 방향을 정립하고 이해관계를 녹여내는 능력과 의지가 없어 보인다. 정부와 기업 등 경제 주체의 노력에 방향성을 부여해 위기 돌파력과 경제에 대한 희망을 높이는 것이 절실하다.

우선 저성장에서 벗어나야 한다. 성장 없이는 좋은 일자리와 복지, 튼튼한 안보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를 위해 한국 경제가 나아갈 지향점은 두 가지 측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가장 쉬운 방법으로는 경제 성장의 정의를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다. 성장은 경제 주체가 창출한 부가가치의 총합인 국내총생산(GDP)의 증가이므로, 저성장은 경제의 부가가치 창출 역량의 감소를 의미한다. 따라서 부가가치 창출 역량의 제고가 정책과 경영의 지향점이 돼야 한다.

두 번째는 경제성장 요소의 추이를 보는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잠재성장률은 2000년대 초반 5.1%에서 2010년대 초반과 후반에는 각각 3.4%와 3.1%로 크게 낮아졌다. 잠재성장률에서 노동 투입 증가율의 기여는 이 기간 동안 0.9%포인트로 일정하고, 따라서 낮아진 잠재성장률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증가했다. 자본 투입 증가율의 기여도 같은 기간 2.2%포인트에서 1.4%포인트로 줄었지만 잠재성장률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소폭 높아졌다.

반면,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의 기여는 같은 기간에 2.0%포인트에서 0.8%포인트로 크게 하락했고 잠재성장률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39%에서 25%로 낮아졌다. 총요소생산성이 기술 혁신과 제도 효율화에 의한 부가가치 창출 역량을 반영하고 자본 투자를 유도한다는 점에서 볼 때, 이는 경제의 부가가치 창출 역량의 제고가 저성장에서 탈피하면서 선진국형 경제로 전환하기 위한 관건임을 시사한다.

부가가치 혁신의 방향은 대략 세 가지다. 첫째, 정책과 경영의 준거를 부가가치 창출에 둬야 한다. 정부는 신산업 창출을 위한 제도적 환경 조성에 집중하고, 기업은 가격과 품질을 넘어 디자인과 생태계의 매력 등 제3의 부가가치 요소를 가미해 서비스와 제품의 명품화를 추구해야 한다. 둘째, 부가가치 창출의 최대 장애물인 규제를 혁파하고 나아가 외국 기업들이 찾아들어 기술개발과 생산을 하는 진정한 글로벌 경제를 추구해야 한다. 특히 드론과 자율주행차, 의료서비스 등 신산업의 국제 경쟁에서는 기업의 노력과 함께 산업 인프라와 규제의 선제적 선진화가 중요하다. 셋째, 정부와 기업은 기술혁신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기업의 연구개발 투자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대학과 정부출연연구소의 기술혁신 역량을 높여야 한다. 정부출연연구소의 거버넌스와 정부의 단기성과주의를 개선하고 연구 인력의 질적 수준도 끌어올려야 한다. 중소기업 정책도 기술혁신 역량 중심으로 개편하고 보조금 의존형 ‘좀비기업’은 배제해야 한다.

부가가치 창출 역량의 저하가 기업의 이익과 근로자의 임금 상승 여력을 낮춰 기술혁신과 소비를 위축시키고 다시 부가가치 창출 역량을 저해하는 악순환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창양 < KAIST 교수·정책학 drcylee@business.kaist.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