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폭력성
잔혹한 사건들이 연일 터진다. 끔찍한 아동 학대와 학교 폭력, 총기 난사와 내전, IS(이슬람국가)의 테러와 대량살상무기 경쟁…. ‘망할 놈의 세상’ ‘최악의 폭력 시대’라는 자탄이 곳곳에서 나온다. 프로이트의 말처럼 파괴와 폭력은 인간의 본성이어서 피할 수 없는 것일까. 현대에 들어 폭력성이 더 격화된 걸까.

인류사를 되짚어 보면 그렇지도 않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의 저자 스티븐 핑커에 따르면 여태껏 발굴된 원시 유골 중 폭력에 의한 사망 비율이 60%에 이른다. 이것이 세계대전을 두 번이나 겪은 20세기 전반 유럽에서는 3%로 낮아졌다. 20세기 후반엔 1%로 줄었다. 8세기 중국 ‘안녹산의 난’ 때 학살된 인구가 3600만명이니 지금 인구비율로 따지면 4억3000만명이나 된다.

스티븐 핑커는 “폭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었다”고 말한다. 인간의 이성과 계몽, 국가 체제의 성립 등이 폭력을 통제하고 제어한 덕분이라는 것이다. 그는 인간을 폭력 상황으로 몰아가는 ‘내면의 악마’와 이를 다스리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가 함께 있다고 설명한다. 악마는 먹잇감 사냥 같은 포식적 폭력이나 우세 경쟁, 복수심, 가학성, 이데올로기를 뜻한다. ‘천사’는 남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감성, 결과를 예상하고 절제하는 자기 통제, 인도주의적 도덕 감각, 성찰적 사고의 이성을 말한다.

물론 내면의 천사를 이끌어 내는 외적 조건도 필요하다. 그가 먼저 꼽은 것은 폭력 충동을 억제하는 국가·사법제도와 상업의 확산이다. 법 체계가 확립되고 시장이 개방될수록 덜 폭력적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곡선적 사고의 ‘여성화’, 미디어로 연결된 ‘세계주의’, 폭력의 악순환이 헛되다는 것을 깨닫는 ‘이성의 에스컬레이터’가 작용한다고 한다. 미국 학자 에릭 가츠키도 “자유시장경제야말로 국가 간 갈등과 폭력을 줄이는 최적의 시스템으로 군사적 분쟁과 민간인 피해를 56%나 완화시켰다”고 분석했다.

엊그제 아프리카 케냐에서 발굴된 1만년 전 유골 12구 중 10구에서 치명적인 외상이 확인됐다고 한다. 둔기와 화살촉, 돌칼 자국까지 발견했다니 고대의 폭력성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만하다. 지금은 어떤가. 인간의 이성과 문명 덕분에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덜 공격적인 사회에 살고 있다. 자유로운 상업과 교역이 폭력을 줄이고 평화를 넓힌다는 칸트의 이론이 확인된 것이다. 폭력은 피할 수 없다는 프로이트의 주장이 이제는 더 이상 맞지 않는다는 것도 입증됐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