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생필품 가격이 세계 최고수준이라는 보도는 어리석은 정부 규제의 한 단면을 잘 드러낸다(한경 1월21일자 A1, 5면). 미국 일본 영국 중국 등 주요 13개국의 농산물 커피 맥주 등 35개 품목을 대상으로 백화점 대형마트 슈퍼마켓 등의 판매 가격을 비교한 결과, 한국은 31개 품목에서 상위 5위에 들었다는 것이다. FTA 체결에 따른 관세 인하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무엇보다 복잡한 유통구조와 높은 유통비용이 문제다. 대표적인 게 농산물이다. 산지 농가에서 도·소매상 등을 거쳐 소비자 식탁에 오르기까지 유통과정이 5~7단계로 너무 길어 유통비용(유통마진)이 그만큼 높아지는 것이다. 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34개 농산물 가격을 분석한 결과, 유통비용이 평균 45%나 됐다는 한경 보도다. 고랭지무 고랭지배추 양파 고구마 닭고기 등은 50%를 훨씬 넘는다. 소고기 돼지고기 등 축산물은 도축, 냉장운송 등이 추가돼 유통단계가 더 길다. 한우 도매가격이 1% 하락해도 이 중 0.56%포인트는 소매 유통마진으로 돌아간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유통구조가 이렇듯 촘촘하게 짜여 있는 탓에 골목식당과 소비자들이 비싼 가격을 치른다.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생산자, 중간상 모두 영세한 탓이 크다. 결국 생산부터 수집, 물류, 배분까지 대형화, 전문화가 이뤄져야 길이 열린다. 유통단계 축소가 바로 유통개혁이다. 그 첨병은 대형마트다. 그렇지만 꽉 막혀 있다. 국회는 유통산업발전법, 지방자치단체는 조례로 대형마트를 골목상권과 이분화시켜 신규 영업장 개설, 영업활동 등에 대한 규제를 확대하기만 한다. 대형마트가 많은 지역일수록 생필품 가격이 낮아 대형마트의 생활물가 안정효과가 크다는 보고서가 잇따르는데도 달라지는 게 없다. 유통산업발전법이 아니라, 유통산업발전 금지법이다. 이미 판매채널은 다변화해 쿠팡 티몬 등 소셜 커머스와 인터넷 판매, 해외직구가 급증하고 있다. 소비자는 달라졌는데 유통구조가 못 따라간다. 국가가 유통혁신을 막은 대가를 국민이 고스란히 치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