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GE 로고가 없네?”

[취재수첩] GE 로고 바로 떼낸 하이얼
20일(현지시간) 미국 최대 주방·욕실 전시회 ‘KBIS 2016’이 열린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 출품업체 부스를 둘러보던 몇몇 바이어가 전시장 한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GE 계열의 빌트인 프리미엄 가전 브랜드 ‘모노그램’ 부스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모노그램 로고 옆에 늘 붙어 있던 GE 마크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한 업체 관계자는 “GE 가전부문을 인수한 중국 하이얼이 모노그램은 더 이상 GE 것이 아님을 공식화하기 위해 로고를 뗀 것 같다”고 말했다. 하이얼은 최근 모노그램을 포함해 GE 가전사업부문을 54억달러에 인수했다. 앞으로 30년간 GE 브랜드를 쓸 수 있는 권리도 넘겨 받았다. 그런데도 곧바로 GE 로고를 뗀 것이다.

빌트인 가전 사업은 단품 판매가 아니라 주택에 냉장고와 오븐, 식기세척기 등을 미리 맞춤형으로 설치해주는 것을 말한다. 기본 패키지 가격이 2만달러가 넘어 연수입이 최소 20만~30만달러 이상인 상류층이 타깃이다. LG전자가 25년 넘게 미국 시장에 공을 들이고도 3년간 각고의 준비를 거쳐 올해 비로소 진출을 선언한 시장이다. 하이얼은 GE 인수를 통해 이를 한 번에 해결했다.

하이얼은 일반 가전시장에서는 GE 브랜드를 활용해 주요 플레이어로 움직일 수 있는 기반을 확보했다. 국내 업체 관계자는 “하이얼의 목표는 GE의 기술이 아니라 상표”라며 “저가 브랜드라는 한계를 가진 하이얼이 미국 시장에 들어가기 위해 54억달러를 쓴 것”이라고 말했다.

브랜드 파워가 약한 중국 가전업체가 이 같은 전략을 사용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중국 하이센스는 일본 샤프의 멕시코 공장을 인수해 북미지역에서 샤프 브랜드로 TV를 팔고 있다.

반도체와 휴대폰, 조선, 철강에 이어 가전까지 중국이 한국 기업의 턱밑까지 치고 올라왔다. 내년 ‘KBIS 2017’ 전시회에서 모노그램 로고 옆에 하이얼 로고가 붙어 있는 고급 가전을 보게 된다면 어떨까. “아직은 중국이 저가 브랜드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해 시간이 충분하다”는 얘기를 하긴 어렵지 않을까.

이심기 라스베이거스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