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정시우 기자]
레버넌트 디카프리오
레버넌트 디카프리오
‘버드맨’이란 걸작을 내놓은 감독은 차기작으로 어떤 걸 만들어야 스스로는 물론 팬들도 충족시킬까. 그에 대한 멋진 응답, 바로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이하 레버넌트)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는 인물을 막다른 코너에 몰아넣고, 그/그녀가 겪는 고통을 지켜보는데 재주가 남다른 감독이다.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아모레스 페로스’)을 시작으로, 숀 펜과 베네치오 델 토로(‘21 그램’), 심지어 브래드 피트(‘바벨’)마저도 그가 주조한 고통의 희생양으로 영화 속에서 극한의 아픔을 삼켜야 했다. 고통을 선사하는 게 악취미라기보다, 고통 앞에 던져진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호기심을 드러내는 이냐리투 감독의 세계에 응답한 또 한명의 배우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다. ‘레버넌트’에서 디카프리오는 이냐리투가 주조한 고통들을 마치 미션처럼 하나씩 하나씩 ‘클리어’ 해 나간다. 진짜, 낭떠러지 끝까지 간다.

서부 개척시대 이전 19세기 아메리카 대륙을 배경으로 한 ‘레버넌트’는 전설적인 모피 사냥꾼 휴 글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휴 글래스는 가죽 사냥꾼 대원들의 길잡이를 해주다 회색곰에게 습격당해 죽음에 직면한다. 대원들 중 한 명인 존 피츠제럴드(톰 하디)는 돈을 받고 글래스의 임종을 지키기로 한다. 하지만 돈과 자신의 생존이 중요했던 피츠제럴드는 저항하는 글래스의 아들을 죽이고 달아난다.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아들의 죽음을 지켜봐야만 했던 글래스는 초인적인 의지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는 아들을 죽인 피츠제럴드를 쫓아 300km가 넘는 광활하고 거친 야생을 걷고 또 걷는다. 죽음에서 돌아온 망령(revenant)처럼.

# 그래서, ‘레버넌트’는 복수영화인가
레버넌트 톰 하디
레버넌트 톰 하디
‘레버넌트’는 복수영화인가. 맞다. 그러나 이냐리투는 일반적인 복수영화들이 지닌 ‘죄의식, 운명’이라는 상투성에 맞서면서 ‘레버넌트’에 독창성을 부여한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점은 복수/죽음으로 가는 길목에서 ‘복수’ 그 자체보다 인간의 ‘생존’에 꽤나 긴 시간을 할애하며,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는 것에 있다.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으로 살아야 할 동력을 잃은 남자가, 복수로 향하는 과정에서, 그 누구보다 삶에 집착하는 모습이 흥미롭다.

죽음이라는 것은 인간이 구체적으로 실감할 수 없는 영역이다. 우린 죽음을 알지만 그 누구에게서도 죽음의 경험을 들을 수 없다. 죽음이 두려운 것은 어쩌면 그래서인지 모른다.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철저히 봉쇄된 비밀의 세계니까. 그러나 죽음을 경험하지는 못해도, 죽음을 가까이에서 목도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휴 글래스가 그렇다. 곰에게 습격당한 후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그리고 아들의 마지막을 지켜보면서 휴 글래스는 죽음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아들아, 절대 포기하지 말거라. 숨이 붙어있는 한 끝까지 싸워야 해” 아들에게 입버릇처럼 주문했던 글래스의 말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자신을 살리는 암호로 돌아온다. 그를 움직이게 한 계기는 분명 복수심이지만, 그를 살리는 동력은 삶을 향한 본능적 의지다. 그래서 ‘레버넌트’는 복수영화인가를 다시 묻는다면,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 가속도의 법칙을 타고 수직 상승하는 디카프리오의 고행


이 영화에서 휴 글래스의 고생은 가속도의 법칙을 타고 수직 확장된다. 고생의 한 고비를 넘기면, 또 다른 고생이 손을 흔든다. 한 마디로 첩첩산중, 사면초가다. 글래스가 벌이는 ‘생존투쟁’을 따라가다 보면, 관객들마저 기진맥진하는 기이한 순간을 맞는다. 휴 글래스를 연기한 디카프리오의 연기가 탁월한 것은, 단순히 고통을 감수해내고 있어서가 아니라 관객이 그 고통을 충분히 느끼게 하다는 것에 있다. 적어도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세상의 왕이다”를 외치던 꽃미남 시절의 디카프리오는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그가 겪는 끝날 줄 모르는 고행이 오스카 트로피를 향한 집념을 상기시키는 것은 다소 아쉬움인데, 그것이 디카프리오의 연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의 수상여부에 호들갑스럽게 반응하는 관객의 문제인지 알 길이 없는 바, 나는 그것이 후자에 가깝다고 생각하기에 그의 연기에 찬사를 보내는 바이다.
레버넌트 2
레버넌트 2
# 그리고 톰 하디와 엠마누엘 루베즈키

이 영화의 또 한명의 중심축, 그러니까 복수의 대상인 톰 하디를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디카프리오는 극한의 상황 속으로 온 몸을 내던져 쉴 틈 없이 자신의 육체적 고통을 드러낸다. 반면 톰 하디는 정확한 타이밍에 불쑥 들어가 벌처럼 쏘고 달아간다. 두 사람의 각기 다른 연기 스타일이 극에 팽팽한 긴장을 선사한다.

‘레버넌트’는 엠마누엘 루베즈키 촬영감독의 영화이기도 하다. 소문대로 루베즈키가 매만진 영상은 압도적이다. ‘그래비티’에서 매혹적인 우주를, ‘버드맨’에서 치밀하게 계산된 롱 테이크의 황홀경을 선보인 엠마누엘 루베키즈는 이번에는 인공조명의 도움 없이 미 대륙의 광활한 풍광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의 화면은 살을 에는 듯한 추위와, 쓰라린 통증과, 막막한 외로움뿐 아니라, 야만의 시대가 안기는 우울의 정서와 숨결까지 전달한다. 루베즈키가 없었다면 ‘레버넌트’는 지금보다 덜 차갑거나 뜨거웠을 것이다. 엠마누엘 루베즈키는 이 영화로 올해 아카데미 촬영상 후보에 지명됐다. 영광을 안는다면 ‘그래비티’ ‘버드맨’에 이은 3연속 수상이 된다. 디카프리오의 수상 여부를 지켜보는 것만큼이나 흥미로운 부분이다.

정시우 기자 siwoorain@
사진. 영화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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