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쪽 색깔이 다른 눈동자란 뜻의 ‘오드 아이(odd-eye)’는 한경닷컴 기자들이 새롭게 선보이는 코너입니다. 각을 세워 쓰는 출입처 기사 대신 어깨에 힘을 빼고 이런저런 신변잡기를 풀어냈습니다. 평소와 조금 다른 시선으로 독자들과 소소한 얘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편집자 주>

[ 김봉구 기자 ] “노동개혁 입법으로 근로자에게 일할 기회를 열어주자”는 게 정부·여당의 일관된 주장이다. 반면 ‘노동개악’ 팻말을 높이 든 야권과 노동계는 수용불가 결의를 다진다. 작년의 노사정대타협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법안 통과를 놓고 평행선을 달리는 이유다.

근로기준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법), 고용보험법,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의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 개정안의 ‘노동개혁 5법’ 가운데 특히 강력 반발에 맞닥뜨린 것은 파견법과 기간제법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3일 대국민담화에서 기간제법을 중장기 과제로 돌리는 대신 나머지 4개 법 통과를 호소했다. 이날 대통령이 언급한 여러 어젠다(의제) 가운데 가장 입장 변화가 감지되는 내용이었다. 예상대로 여야는 이 절충안을 놓고 다시 부딪쳤다. 대승적 결단을 받아 안아 하루빨리 통과시키자는 쪽과 파견법 또한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쪽으로 갈렸다.
18일 판교역 광장의 '민생구하기 입법촉구 천만 서명운동’ 부스를 방문해 서명하는 박근혜 대통령. / 한경 DB
18일 판교역 광장의 '민생구하기 입법촉구 천만 서명운동’ 부스를 방문해 서명하는 박근혜 대통령. / 한경 DB
담화를 바삐 받아 적다 새삼 멈칫한 대목은 ‘노동개혁’과 법안들이 규정한 ‘근로자’의 간극이다.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단어들이지만 세세히 따져보면 좀 이상하지 않은가. ‘노사정위’ 타협으로 ‘노동개혁’ 한다는데, 바꿔야 할 대상은 ‘근로기준법’과 ‘근로자’의 보호에 관한 내용이다. 이를 관장하는 정부부처 역시 고용노동부지, ‘고용근로부’가 아닌데 말이다.

그렇게 보면 근로자는 다소 모순적인 단어다. 노동자에 굳이 ‘열심히’란 의미를 덧대어 놨다. 투박하게 영어로 표현하면 worker(노동자)와 hard worker(근로자) 정도의 의미차가 생긴다.

열심히 일한다는 뜻 자체야 나쁠 리 없다. 단 가치중립적이진 않다. 의미의 객관성, 용어의 대표성 문제가 있다. 기왕이면 ‘우등생’이 좋겠지만 가치중립적 개념인 ‘학생’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쌍을 이루는 표현인 사용자나 경영자를 ‘근사자’나 ‘근경자’로 쓰지도 않는다.

쟁점인 파견·기간제 등 비정규직 형태와 근로자 단어의 조합도 영 어색하다. 이들이 정규직에 비해 ‘근로’하기는 쉽지 않은 환경이니까. 불가피하게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그들의 상황에 비춰보면 ‘노동’이란 평균적 어휘가 적합해 보인다. 그나마 ‘정규직 근로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정도는 어느 면에서 수긍되는 조어다. 단순 노동형태가 아닌 위계의 성격을 띠는 탓이다.

물론 근로자란 단어가 취사선택된 이유는 있을 터이다. 분단 상황에 기인한 이념적 요인이 가장 크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 굳이 노동자란 단어를 이념적으로 해석할 근거도, 근로자란 표현을 고수할 필요도 없다. 되레 부득부득 ‘근로자’를 고집할수록 “재벌과 사용자의 기득권을 옹호하는 용어”로 공격받는 빌미만 제공할 것이다. 이제 한국사회는 좀 더 쿨해져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보다 더 중요한 지점은 언어의 혼란을 바로잡는 것이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 언어가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을 넘어 사유를 지배하고 세계를 인식하는 통로로 기능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단어의 온전한 의미를 받아들여 정확하게 쓰는 건 제대로 된 개혁의 출발점이기도 할 것이다. 근로자를 노동자로, 노동개혁을 근로개혁으로 바꿔보자. ‘노동자’가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근로개혁’ 해나가자는 논의 방향이 순리 아닐까.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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