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황금박쥐
박쥐는 서구보다 동양에서 더 대접받는 동물이다. 서양에서 유령을 떠올리는 것과 달리 동양에선 부귀와 장수를 상징한다. 박쥐의 한자 편복()이 복(福)과 같은 발음이어서 옛사람들은 베개나 장롱 손잡이, 기와, 노리개 등에 즐겨 썼다. 황금박쥐로 불리는 붉은박쥐는 특별히 좋은 복의 징표로 삼았다. 중국식당에 붉은 글씨로 쓴 복자를 거꾸로 매달아 놓는 것도 박쥐가 거꾸로 매달려 있듯이 복이 많기를 빈다는 뜻이다.

박쥐의 기원이 약 6200만년이나 된다고 한다. 장수동물이기도 하다. 민간신화에서는 흰박쥐가 1000년이나 사는 것으로 묘사된다. 박쥐의 먹이는 모기 등 곤충이다. 대식가여서 하루에 약 2000마리를 잡아먹는다. 사냥은 주로 밤에 하고, 낮에는 나뭇가지나 동굴 속에서 쉰다. 겨울에 4개월 안팎의 동면에 들고 여름에는 대나무밭이나 수풀 속, 고목 둥치에 서식한다.

지구상의 박쥐는 800여종이고, 우리나라에는 23종이 산다. 이 가운데 3종이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지정돼 있다. 특히 황금박쥐는 세계적인 희귀종으로 ‘1급 멸종위기 야생생물’이다. 1999년 전남 함평 고봉산 동굴에서 겨울잠을 자는 모습이 처음 발견됐고 2005년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호남과 영남 북부, 충청 지역에서 가끔 발견되던 황금박쥐가 지난해 강원 치악산에서 발견됐다.

엊그제는 오대산과 월악산에서도 확인됐다. ‘2급 멸종위기 야생생물’인 작은관코박쥐와 토끼박쥐의 존재도 함께 확인됐다. 멸종위기 박쥐 3종이 모두 발견된 것은 2014년 소백산에 이어 두 번째라고 한다. 이는 백두대간 중심축의 생태계가 그만큼 잘 보존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박쥐는 환경·기후변화에 예민한 ‘민감종’이다. 1초에 최고 200번 정도의 초음파를 내보내 목표물에서 되돌아 오는 반사파로 먹이의 종류와 거리, 질감까지 알아낸다. 초음파 반향을 3차원적으로 인식해서 0.3㎜ 간격의 물체를 구별할 수 있다고 한다. 먹이를 탐색할 때와 추적할 때 쓰는 감각을 달리할 정도로 똑똑하다.

일상적으로 비행할 때 초당 10회 정도의 파동을 내다가 먹이를 찾거나 눈앞의 장애물을 피할 때는 더 많은 파동을 낸다. 그러다 최종 목표물에 접근하면 20배 이상 빨리 움직인다.

과학자들이 초음파를 이용한 박쥐의 물체 인식 메커니즘을 알아내는 데는 약 150년이 걸렸다고 한다. 현대과학의 총아인 인공위성도 이 원리를 활용해 물체를 식별하고 각종 정보를 전한다니 더욱 놀랍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