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9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쇼 ‘CES 2016’의 인텔 전시장서 관람객이 게임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6~9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쇼 ‘CES 2016’의 인텔 전시장서 관람객이 게임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968년 창업한 인텔의 역사는 위기의 연속이었다. 1980년대 중반 일본 반도체 회사들에 D램 시장을 빼앗겼고, 1990년대 중반 야심차게 내놓은 중앙처리장치(CPU) 제품 펜티엄이 연산오류 논란에 휩싸였다. 2010년대 들어선 스마트폰과 태블릿의 등장으로 PC시장이 침체되는 난국에 빠졌다. 하지만 그때마다 위기를 극복한 인텔은 지금까지도 세계 최대 반도체 회사로서의 위상을 지켜나가고 있다. 탄탄한 기술력과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는 기업문화 덕분이다.

○“CPU 뜬다” 미리 대비

'PC 두뇌' 혁신 이끈 인텔, 위기 때마다 더 강해진 '반도체 강자'
PC와 스마트폰의 임시 기억장치로 쓰이는 D램은 IBM이 처음 개발했지만 이를 상용화하고 시장을 개척한 것은 인텔이었다. 인텔은 1969년 첫 메모리 반도체인 ‘3101’을 개발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이듬해 10월 성능이 향상된 ‘1103’으로 재도전했다. 칩 크기를 줄여 생산 단가를 낮췄기 때문에 구매자들의 부담을 줄여줬다. 시장이 반응을 보이면서 본격적으로 D램 시장이 커졌고, 인텔은 1971년부터 곧바로 흑자를 냈다. 인텔의 성공을 보고 모토로라, AMD 등 후발주자들이 D램 시장에 뛰어들었다.

'PC 두뇌' 혁신 이끈 인텔, 위기 때마다 더 강해진 '반도체 강자'
1980년대 들어 인텔에 위기가 찾아왔다. 1970년대 중반부터 D램 시장에 뛰어든 일본 NEC, 내셔널반도체, 후지쓰, 히타치, 도시바 등이 물량 공세를 펼치면서다. 1974년만 해도 미국 100%, 일본 0%였던 시장점유율은 1979년 각각 58%와 40%로 간격이 줄었다. 1986년엔 일본 업체들의 점유율이 80%에 육박했다. 1985년 인텔을 시작으로 미국 업체들은 차례차례 D램 시장을 떠났다.

인텔의 대안이 된 건 PC의 ‘두뇌’ 격인 CPU였다. 하지만 처음부터 CPU가 각광받은 것은 아니었다. 인텔은 1971년 세계 최초의 상용화 CPU인 ‘4004’를 시장에 내놓지만 수요는 매우 조금씩 늘었다. 1974년 인텔은 1억3500만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직원이 3100여명으로 늘었지만 대부분 D램 등 메모리 반도체 덕분이었다. 당시 8개의 인텔 공장 중 CPU를 생산하는 공장은 한 곳에 불과했다. 일부 임직원은 CPU산업에 손을 뗄 것을 건의했지만 당시 CEO였던 고든 무어는 “CPU가 언젠가 컴퓨터산업을 주도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이후 IBM발 PC혁명으로 CPU 수요가 폭증했고 D램 시장을 떠난 인텔은 대신 더 큰 CPU 시장을 얻게 됐다.

○펜티엄 오류 사태…기술력으로 극복

'PC 두뇌' 혁신 이끈 인텔, 위기 때마다 더 강해진 '반도체 강자'
이른바 ‘인텔 286’ 칩을 시작으로 386칩, 486칩을 내놓으며 승승장구하던 인텔은 1993년 i486칩보다 5배 이상 연산능력이 빠른 펜티엄 칩을 내놓으며 그해 포천지(紙) 표지를 장식했다. 하지만 한 대학 교수가 펜티엄 CPU의 부동소수점 연산에 오류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일상적인 계산에서는 문제가 안 되는 사소한 오류였지만 인텔 경영진의 안일한 대응으로 논란은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소비자들의 인내는 한계에 달했고, 급기야 1994년 12월 IBM이 펜티엄 PC 판매를 중지했다. 결국 당시 CEO였던 앤디 그로브는 “모든 펜티엄을 바꿔준다”며 사상 최대의 리콜을 선언했다. 하지만 회사 이미지는 큰 손상을 입은 뒤였다. 그 틈을 노리고 경쟁사 AMD가 2000년 세계 최초로 1㎓(기가헤르츠)로 동작하는 ‘애슬론’ CPU를 내놓았지만 인텔을 살린 건 또다시 기술력이었다.

'PC 두뇌' 혁신 이끈 인텔, 위기 때마다 더 강해진 '반도체 강자'
AMD에 ‘1㎓ 최초 돌파’라는 타이틀을 빼앗긴 인텔은 그해 바로 2.8㎓의 펜티엄4를 출시했고, 2004년엔 이를 3.8㎓로 끌어올렸다. 2006년엔 세계 최초의 쿼드코어 CPU를 선보이며 경쟁사와의 격차를 벌리기 시작했다. 인텔의 지난해 3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147억달러와 42억달러로 같은 기간 매출 11억달러, 영업손실 2억달러를 낸 AMD를 완전히 압도했다.

○수평적 조직문화로 적극적 문제 제기

인텔의 위기 극복엔 수평적인 조직문화도 한몫했다는 진단이다. 회의 시간에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아무 두려움 없이 자신의 생각을 밝힐 수 있는 회사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로브 전 CEO는 “회의시간에 아무 말이 없는 사람은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이거나 분위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을 못하는 사람 둘 중 하나”라며 “전자라면 회의실에서 쫓아내야 하지만 후자라면 회사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텔은 임원이든 말단 직원이든 두 평 남짓한 공간에 똑같은 책상을 제공한다. 주차장도 모두 평등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때문에 CEO 그로브 역시 조금만 늦게 출근해도 주차 공간을 찾아 회사를 몇 바퀴씩 돌아야 했다.

반도체산업도 다른 정보기술(IT)산업과 마찬가지로 변화의 속도가 빠르다. 해마다 칩 성능은 향상되는데 반대로 가격은 떨어진다. 계속 참신한 제품을 내놓지 못하면 순식간에 경쟁에서 뒤떨어진다. 인텔의 수평적인 문화는 밖에 보여주기 위한 사치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 방안이었다.

인텔 직원 약 8만명 중 4만3000여명이 기술 관련 학위 소지자다. 석사 학위자는 1만2000여명, 박사급 인력도 4000여명에 이른다. 경영진은 이들에게 “내가 지시한 대로 하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직원들은 분기마다 스스로 자신의 목표를 수립하고 달성해야 한다. 폴 오텔리니 전 CEO는 “인텔은 위기를 겪을 때마다 더 강해졌다”며 “수평적 문화를 통해 구성원 누구나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고 해결 방안을 내놓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