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모노 코레’. ‘한국의 기모노’라는 뜻의 프랑스어다.

[한경에세이] '키모노 코레'가 아니라 '한복'
1993년 프랑스 파리에서 나의 첫 번째 패션쇼가 열린 뒤 현지 언론들은 본격적으로 우리 옷을 다루기 시작했다. 모던 한복을 처음 시도해 선보인 시기였고, 앞으로 파리에서의 내 운명이 결정되는 기로였기 때문에 매 순간 언론 보도 하나하나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유력 패션잡지에 실린 한 기사 때문에 순간 망연자실해졌다. ‘키모노 코레’ ‘코리안 키모노’. 그들은 한복을 일컫는 단어로 일본의 전통의상 기모노란 어휘를 빌려 쓰고 있었다. 한복이 왜 기모노에 빗대서 표현돼야 하는 것인가. 기가 막히다 못해 화가 치밀어 올랐다.

물론 기모노는 서양에서 이미 널리 알려진 옷이다. 기모노에서 영향을 받은 패션 트렌드와 예술 작품 역시 무수히 많다. 확실히 기모노엔 기모노만의 아름다움이 있다. 그러나 한복과 기모노는 엄연히 다르다. 그리고 한복에는 ‘한복’이란 이름이 있다. 굳이 남의 언어를 빌려 와서 써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사실 파리에서의 내 첫 패션쇼가 방송에 나올 때까지만 해도 기모노란 단어는 등장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행사가 패션 잡지들에 실리면서 한 단계를 더 거치자, 옷을 설명하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그런 제목이 붙은 것 같았다. 해당 기사 내용 중엔 “한국의 한복이 일본 기모노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말도 있었다.

나는 한복을 알려야겠단 생각으로 한복 전시회 개최를 밀고 나갔다. 패션쇼 하나를 기획하는 것보다 규모도 크고 더 힘들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1996년, 파리 진출 3년째 되던 해 파리 뤽상부르궁전 오랑제리 전시장에서 한복 전시회가 열렸다. 그중에서도 우리 전시는 990㎡가 넘는 가장 넓은 공간에서 열렸다. 궁중의상과 평상복, 무희복과 절의 모습, 400년 전에 출토된 의복, 안방의 돌상과 한국 문화의 깊이를 드러내 주는 아름다운 소품 등을 잔디가 깔린 전시장에 전시했다.

전시회가 성황리에 끝난 뒤 한복을 ‘키모노 코레’라 부르는 일은 점차 사라졌다. 파리에 부티크를 열고, 패션쇼에 연달아 참가하면서 점점 ‘한복’이란 고유명사로 불리게 됐다. 내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복이란 옷의 위상을 찾아준 것 같았다. 나로선 자부심을 느끼는 일이다.

이영희 < 메종 드 이영희 대표 leeyounghee@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