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한혜리 기자]
박희본01
박희본01
박희본에게는 특유의 마력이 있다. ‘언니’라고 부르고 싶은 마력. 처음 보는 이도 박희본과 한 두 마디를 나누게 된다면 절로 ‘언니’ 소리를 내뱉게 될 지도 모른다. 박희본을 보자마자 얘기는 술술 나왔다. 이야기를 이끌어 내는 배우였다. 그만큼 편안한 매력을 가진 박희본이 케이블채널 tvN ‘풍선껌’에서 편집증을 가진 까칠한 홍이슬을 연기했다. ‘어울릴까?, 어색하진 않을까?’ 박희본의 ‘편안한 매력’이 걸림돌이 될 거라는 우려와 걱정 속에서도 홍이슬의 내면의 상처를 섬세하게 그려냈다. “타협을 찾기까지 오래 걸렸다”라는 박희본의 말처럼 홍이슬과 박희본은 거듭된 충돌을 거쳤다. 때문에 섬세한 표현이 나왔고, 우려는 순식간에 잠식될 수 있었다.

“재밌다.” ‘풍선껌’부터 웹드라마 ‘대세는 백합’, ‘출출한 여자2’까지 ‘열일’하는 이유에 대해 박희본은 이렇게 답했다. 고작 세 음절의 짧은 단어였지만 박희본의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재미’, 단순한 이유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기지 못하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고 하던가. 박희본은 일도 인생도 충분히 즐기고 있었고, 즐거워했다. 박희본은 인터뷰 내내 ‘진짜 언니’처럼 자신의 ‘재미’있는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솔직히 털어놨다.

10. ‘풍선껌’이 끝나자마자 무얼 했나.
박희본 : 술 마셨다.(웃음) 술 마시고 바로 다음 날 ‘출출한 여자2’ 번외편 촬영 갔다. ‘출출한 여자2’는 여유있게 찍으려고 했는데 연말엔 송년회도 많아서… 추워서 감기까지 얻고. 하하.

10. 쉬지도 못했겠다.
박희본 : 촬영장이 속리산 법주사였다. 너무 좋았다. 공기도 너무 좋고, 아름답기까지 하고. 비록 잠은 못 잤지만.(웃음)

10. ‘풍선껌’을 선택한 계기를 듣고 싶다.
박희본 : 처음엔 좀 망설였다. 제일 처음 인물 설명을 접했을 때 내가 할 수 있을까 싶더라. 한창 살을 빼던 시기였는데 또 살집이 엄청 많은 캐릭터였기도 했고. 이제 좀 날씬하고 섹시한 걸 해야겠다 싶었는데.(웃음) 대본이 재미있어서 그랬는지 마음에서 안 떠나더라. 이런 기회가 또 언제 오겠나 싶어 선택해버렸다. 감독님이 처음 봤을 때 나보고 생각보다 날씬하다고 하시더라. 그때가 딱 ‘내 친구와 식샤를 합시다’(케이블채널 tvN, 2015) 촬영 끝났을 때였거든. 2주 정도 혼자 남아서 여행을 했다. 나는 여행을 하면 좀 살이 빠지는 체질인가보다. 많이 먹는데 또 그만큼 많이 걸어서 그런가. 아무튼 당시 나는 이슬이의 캐릭터랑 너무 달랐다. 그래도 제작진 분들이 믿어주셨지. 작가님이 이슬이의 살은 라면이나 치맥(치킨과 맥주)으로 찌운 살이 아니라, 정말 어렸을 때부터 고단백 영양식을 먹고 찌운 살이라고 하셨다. 살의 질이 다르다고. 그래서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질이 다른 살은 어떻게 표현해야하나 싶더라. 하하. 결국 운동 자제하고 많이 먹었다.

10. 감정선이 쉬운 드라마는 아니었다. 다른 드라마처럼 짝사랑을 ‘짝사랑이다!’라고 대놓고 보여준 것도 아니고. 감정표현은 은유적인데, 대사는 직설적이랄까.
박희본 : 맞다. 은유적인 감정을 직설적으로 내뱉는다. 일단 이슬이와 나는 정서가 많이 달랐다. 이슬이는 차분한 캐릭터였는데 난 좀 산만하다. 하하. 발성부터 차근차근히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절로 기분이 가라앉기도 했고. 사무적이고 직설적인 이슬이의 성격을 심도 있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결국 혼자 고민할 일이 아니라고 판단해서 감독님, 작가님께 재차 여쭤봤다. 배우 언니, 오빠들한테도 조언을 받고. 한 신 찍고 모니터하고, 한 신 찍고 연락하고를 반복했다. 덕분에 설명과 각주를 많이 받았지.

10. 노력을 많이 기울였기 때문에 특별한 작품으로 남았을 것 같다.
박희본 : 걱정이 많이 됐다. 이런 감성을 가진 캐릭터는 처음으로 시도한 것이었으니. 긴장도 많이 됐고, 잘할 수 있을까 걱정도 많이 됐고. 내 입으로 할 말은 아니지만, 막상 공개되니 ‘명품 드라마’라고 칭찬해주시더라. 또 워낙 작가님 필력도 좋으셔서 어록도 생기고. 좋은 결과로 남아서 감개가 무량할 따름이다.
박희본04
박희본04
10. 홍이슬은 그동안 맡아온 역할과는 좀 달랐다. 웃지도 않고, 털털하지도 않고. ‘언니’ 같지가 않았다. 박희본이 느낀 홍이슬은 어땠나?
박희본 : 사실은 답답한 면이 너무 많았다. 실제 난 연애할 때도 직설적인 편이거든. 물론 이슬이도 표현했지만 나보다는 더 어리숙한 면이 많았다. 특히 짝사랑을 하면서 자기 마음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난관에 봉착 했을 때 해결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행아(려원)에게 “행아 씨는 엄마가 없어서 모르나본데” 이런 말을 내뱉었잖아. 그러고 또 후회해서 울고. 상대방에게 상처 주는 짓을 했지. 그래서인지 홍이슬과 박희본의 타협점을 빨리 못 찾은 것 같다. 이슬이만 생각하면 “너 그러면 안 되지! 이렇게 하면 안돼!”라고 소리칠 정도로. 나중에 방송을 보면서 이슬이 감정에 대한 타당성을 찾았다. “여기서 얘(이슬이)가 이랬었구나”하고.

10. 그렇게 홍이슬을 이해했던 게 언제였나.
박희본 : 이슬이는 맹목적인 욕심을 표현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할아버지, 나 저 사람 갖고 싶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실 한 번도 뭘 갖고 싶다고 해본 적 없는 인물인데, 정작 갖고 싶은 게 생겼을 때 가지지 못했던거지. 손에서 물이 붙잡을 수 없이 흘러내리듯이. ‘이게 왜 안 돼?’라는 초보의 마음과도 같았다. 그래서 항상 ‘박리환(이동욱)은 내꺼야’라고 다짐하며 촬영에 임했다. 시작 전에 이슬이의 마음을 미리 짐작했었는데 이슬이는 아마 ‘김행아는 행복하지 말아야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 거다. 내가 행복해지고 싶다는 것보다 ‘당신 행복해 하지마’라는 상대적인 마음. 그게 이슬이가 행복을 추구해가는 길이었다. 그런 시간들을 거치면서 이슬이에게도 통찰의 기회들이 찾아온 것 같았다. 어쨌든 사람마다 삶의 빈 공간이 있기 마련인데, 이슬이한테는 그게 연애나 사랑이 아니라 아마도 자기애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렇게 이해해나갔다. 그래서 박리환을 가져야겠다는 단순한 생각을 가지게 된 거였고. 다행히 이동욱 오빠가 너무 멋있어서 이입이 아주 잘됐다. 감정도 술술 나오고. 하하.

10. 새로운 시도였던 만큼 낯설기도 했다. 낯선 박희본의 모습을 대중은 어떻게 볼 것 같았나.
박희본 : 그런 생각은 잘 안했다. 아직도 ‘풍선껌’에서 나를 처음 본 사람도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냥 ‘매사에 후회 없이 하자’라는 마음이었다. 캐릭터를 떠나 좋은 드라마를 찍었으니 많이 기억해주실 것 같다.

10. 박희본을 떠올리면 일련의 이미지가 있다. 편안하고, 언니 같고, 친근한. 그동안의 역할 때문이겠지. 이미지에 대한 부담감은 없나? 늘 편안해야할 것 같고, 늘 솔직해야할 것 같은.
박희본 : (낮은 목소리로) 아직도 나는 연기에 목마르기 때문에…(일동 웃음) 아직 스펙트럼을 더 넓히고 싶다. 캐스팅은 보통 전작을 보고 해주시잖아. 닮은 캐릭터를 할 때 ‘어차피 내가 해오던 거니까 늘 하던대로 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에 안주하는 게 너무 두렵더라. 그래서 늘 새로운 걸 시도하려 한다. 내 안에서 소스를 더 만들어야겠지. 솔직히 이슬이 같은 캐릭터는 안 해 본거니까 재밌었다. 목소리도 깔고. 너무 목소리를 깔았나? 노래 부를 때 고음이 잘 안 올라가더라. 톤이 많이 낮아졌다. 연습하면 또 오르겠지? 하하.

10. 배우에게 이미지란 무엇일까.
박희본 : 뭘까… (신중하게) 이미지는 샘처럼 쉼 없이 샘솟으면 좋고, 마르면 마른대로 솟아나길 기다리는. 하하. 단 시간에 이렇게 했다, 저렇게 했다 변화무쌍하게 변신하는 것도 좋겠지만, 나는 게을러서 그런지 그렇게까진 못하겠더라. 순차적으로 조금씩 이미지 폭을 넓혀가고 싶다.

10. 그렇다면 이미지가 아닌 ‘박희본’ 자체는 어떤 사람인가?
박희본 : 나? 나는… 합리적인 까칠한? 하하. 매너에 예민해서. 그게 비합리적인 건 아니잖아. 말도 안되는 걸 요구하는 게 아니니까. 그래서 혼자 보내는 시간들을 좋아한다. 생각도 많이 하고 사람들도 관찰하고. 아직까지 편협한 생각이 있다. 많이 깨려고 노력하긴 하지만. 회색지대로 와야할텐데… 흑 아니면 백이라.(웃음) 최근엔 ‘쿨’함에 맛 들렸다. ‘어, 괜찮아, 괜찮아!’,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해주겠지’라는. 그렇게 빨리 비워내려고 한다. 미드(미국드라마) 같은데서 보면 그런 캐릭터들 많잖아. 쉽게 휘발시키고 해소하는, ‘음, 오케이!’ 같은. 하하. 내가 평소에 미드 캐릭터들을 따라하는 걸 좋아하는데 이게 어느정도 영향이 있는 것 같다. 약간 미국인 마인드를 갖게 된달까. 하하.
박희본03
박희본03
10. ‘풍선껌’ 종영 후, 웹드라마 ‘대세는 백합’에 우정출연으로 나왔다.
박희본 : 윤성호 감독님이 ‘대세는 백합’을 준비하신다는 걸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스케줄도 그렇고, 감독님이 원하시지 않을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감독님 거는 내가 출연해야하지 않을까?’라고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다. 하하. 감독님 말씀이 전혀 없으시기에 넌지시 물어봤지. “감독님 뭐 하세요?”, “촬영해요”, “촬영하면 놀러갈게요”, “안 바빠요?”, “전혀 안바빠요, 걱정마세요!”라고 던졌다. 그랬더니 “희본 씨, 백합물(여성 동성애를 다룬 콘텐츠) 괜찮아요?”라고 물으셔서 난 “너무 좋죠”라고 답했다. 일전에 영화 ‘도약선생’도 퀴어 코드가 있었거든. 꼭 시도를 해보고 싶던 영역이었다. 내가 먼저 “감독님 출연할 만한 역할 있으면 시켜주세요”라고 해서 출연하게 됐다. 하루 찍었다.(웃음)

10. 또 ‘출출한 여자2’가 방송을 기다리고 있다. 가만 보면 쉬지 않는 배우다. 요즘말로 ‘소처럼 일하는 배우’.
박희본 : 나? 아니다. 전혀. 작품이 릴리즈 되는 시기 때문에 그렇지, 쉬는 시간 많다. (기침을 하더니 혼잣말로) 많이 늙었어.(웃음) 이제는 ‘놀지 말아야지’ 한다. 사실 작품 끝나고 따뜻한 나라로 여행 가볼까 했거든. 재작년 12월에는 호주브리즈번에서 열린 ‘브리즈번 아시아 퍼시픽 영화제’에 참석했었다. 김태용 감독님의 ‘청춘의 십자로’를 통해. 현존하는 우리나라의 제일 오래된 무성 영화를 7년 동안 복원한 작품인데, 평소에 굉장한 팬이었다. 노래도 항상 즐겨 불렀고. 마침 원래 하시던 여자배우님이 못하시게 됐는데, 이 때다 싶어 오디션 영상을 정식으로 찍어 보냈다. 감독님이 노래는 조금 아쉽지만 한 번 해보자고 하시더라. 그렇게 공연과 함께 재작년 겨울을 호주에서 보냈다. 그래서 그런가 지금 너무 춥다.(웃음) ‘추울 때 따뜻한 나라에 오면 되는구나’를 알았다. 썸머 크리스마스(Summer Christmas)를. 가까운 동남아시아라도 가려했지만… 놀 때가 아니다. 일 해야 한다.(웃음)

10. 작품을 쉼 없이 이어가는데도 벅차지 않아 보인다. 주된 원동력은 무엇인가?
박희본 : 참 단순하게도 재밌기 때문이다. 하면 할수록 눈에 보이는 것도 많고 아쉬운 부분도 생기는데 그걸 빨리 휘발시키니까. 부대끼지 않게 마음에 안 드는 것들은 빨리 털어버린다. 그러다보면 남는 건 재밌는 기억밖에 없지. 지금까지 모든 작품들이 되짚어보면 다 재미있었던 것 같다. 사실 어릴 적부터 기초체력이 좋아서 체력적으로 힘들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 하하. 현장 기운이 나랑 잘 맞는 것 같다. 기분이 안 좋아도 현장에 가면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지더라.

10. 개인적으로 박희본을 배우로 다시 보기 시작한 건 웹드라마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였다. 그전까진 ‘밀크’ 박희본이었지. 그 이미지를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에서 전환시킨 것 같다. 본인이 느끼기에도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가 어떤 기준점이 됐나.
박희본 :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는 주인공 롤이 굉장히 컸다. 그야말로 희엔터를 이끌어가는 중심이었으니까. 걱정이 많았다. 생각해보면 그 ‘걱정’도 좀 교만했던 것 같다. 워낙 옆에 좋은 배우들이 함께 했지 않나. 김성령 선배, 조한철 선배, 박혁권 선배같은. 나 혼자 극을 이끌고 가야 한다는 생각이 참 교만한 생각이었던 셈이었지.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를 통해 도움도 청해야하고, 능동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걸 알았다. 많이 배웠다.

10. 윤성호 감독을 만난 것도 본인의 연기 경력에 큰 사건이지 않을까 싶다.
박희본 : 코드가 맞는 건지 모르겠는데, 너무 재밌다. 몇 년을 알고 지냈는데도 만나기만하면 ‘깔깔깔깔’ 웃는다. 그래서 감독님이 의심하기도 했었다. “희본 씨, 일부러 나한테 웃어주는거지”라고. 한창 인터넷 판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를 할 때 내가 감독님을 ‘구세주’라고 칭했었다. 그랬더니 ‘구세주’란 단어를 쉽게 남용하지 말라고 하시더라. 종교적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일동웃음) 그래서 감독님이 우리는 유비, 조자룡이라고 했다. 서로 각개 약진을 펼치다 협공으로 도업을 이루는. 하하하하. 정말 윤성호 감독님은 나한테 ‘메시아’, ‘메시아’도 저번에 한 번 혼났지. 자꾸 그러지 말라고. ‘그럼 인공호흡기?’라고 하니, 그것도 이상하다고 하셨다.(웃음) 감독님을 보면서 ‘인사가 만사다’라고 생각한다. 좋은 사람들이 곁에 있으니까.

10. 그와 많은 작품을 했다. 그의 작품에 늘 얼굴을 비치기도 했고. 이쯤되면 윤성호 감독의 페르소나(다른 인격)는 박희본인가 싶다.
박희본 : 음, 생각해보면 감독님의 페르소나였던 적은 없었다. 주인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기도 하지. 어떻게 보면 윤성호 감독님의 페르소나는 박혁권 오빠일 수도 있겠다 싶다. 분량이 적어도 그가 쥐고 있는 키가 중요했으니까. 내가 페르소나였던 적은 없던 것 같다.
박희본02
박희본02
10. 과거 밀크얘기를 하려한다.
박희본 : 활동이 참 짧았었는데 기억해주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서)현진이랑 자주 얘기한다. “사람들이 우릴 기억해?”

10. 기억하다마다. 팬들에겐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겠지. 박희본에게도 밀크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는가.
박희본 : 지금은 정신과 몸의 건강을 지향하는데 그땐 필요 이상으로 튼튼했던 것 같다. 멘탈도, 체력도. 그게 무기였다. 지금은 노쇠했지만. 당시엔 멘탈이 단단해서 그랬는지 짧은 활동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마냥 행복했던 것 같다. 군부대란 군부대는 다 가보고, 독도에서 수영도 해보고. 많은 경험을 했다. 결국 돌이켜보면 그때의 시간들이 지금의 좋은 자양분이 됐잖아. 예를들어 안무를 빨리 익힌다든지, 걸그룹 출신이니까. 확실히 장점이 있다. 그래서인지 내 이력이 참 좋다. 훈장 같기도 하고. 재미있었다.

10. 랩 파트가 많았다. 메인래퍼였나.
박희본 : 그냥 리더였다. 나이순으로.(웃음)

10. 같은 멤버 서현진도 함께 연기활동을 하고 있다. 얼마 전엔 함께 여행도 다녀오고. 어떻게 보면 운명공동체 같은 그룹의 두 사람이 10여년이 흘러 다른 분야의 필더에서 만나게 된 거잖아. 기분이 색다를 것도 같은데.
박희본 : 뿌듯하고 든든하다. 현진이랑은 철부지 어릴 적부터 사춘기를 지나는 성장과정을 다 함께 겪었다. 내 전사와 내막을 알고 있고,(웃음) 같은 고민을 지니고 있다는 사람이 있다는 게 참 든든하더라. 아주 명쾌하게 고민을 해결해줄 때도 있다. 걱정할 일이 있을 땐 저보다 나를 더 걱정해주고, 화나는 일이 있을 땐 나보다 더 화를 내준다. 현진이는 참 고맙고 든든하다.

10. 참 행보가 남다르다. 걸그룹에서 독립영화계로, 이런 행보는 사례가 없잖아. 박희본이 개척한 새로운 길이 아닌가.
박희본 : 다른 분 없으시려나. 하하. 비단 제작 환경이나 매체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재밌게 잘 할 수 있는 걸 찾았을 뿐이었지. 사실 ‘그저 잘 될 거야’라며 방만한 순간들이 있었다. 노력을 안했다기 보다 너무 억지스럽게 긍정적으로 전환시키려 했던거지. 그때 좀 자괴감이 많이 들었고. 그러다 한 3년 전부터 야구를 보기 시작했다. 회색을 보던 눈이 넓은 초록색 필드를 바라보고,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한 마음으로 응원하고. 그게 고맙게 느껴졌다. 야구를 보면서 감동을 많이 받았다. 타자는 스윙 한 번에, 투수는 공 하나에 진심어린 간절함이 담겨있잖아. 나 역시도 기회가 왔을 때 열과 성을 다해야겠다는 걸 야구를 보면서 느꼈다. 참 멋진 운동인 것 같다.

10. 박희본에게 ‘편안하다’라는 느낌을 받는 이유가, 박희본 스스로도 편안한 상태이기 때문은 아닌가 싶다. 즐거운 일,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게 느껴진다.
박희본 : 안 맞는 옷을 억지로 입었을 때 그 불편함이나 어색함을 잘 못 감추는 것 같다. 화가 나거나 슬픈 감정도 표정에 다 드러난다. 친한 친구들은 “빨리 딴 데 봐, 너 지금 표정 이상해”라고 지적할 때도 있다.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걸 자제하려는 데도 잘 안되더라. 주의해야지. 대인관계를 위해서.(웃음)

10. 지금은 즐거운가?
박희본 : 재밌다. 난 아직 연기에 목마르기 때문에.(일동웃음) 몇 해 전부턴 뭘 써 보기도 한다. 거창한 건 아니고 트리트먼트 같은? 떠오른 게 있으면 그때 그때 적고, 미드를 보다가도 하나의 감정선을 주제로 확장해서 써보기도 하고. 캐릭터 만드는 재미가 있다. ‘나중에 혹시 나한테 이런 캐릭터가 들어온다면 더 잘 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도 든다. 이미지 트레이닝 같은 간접적인 경험인 거지. 어릴 적엔 미래에 대한 불안과 조바심으로 여행을 꿈도 꾸지 못했었다. 내 자리를 비운다는 부재가 압력처럼 다가와서 그게 두려웠다. 막상 여행을 해보니 에너지가 크더라. 원동력이 생긴 기분이었다. 그제야 ‘나는 여행을 하면 기분이 좋아지나봐’라고 느꼈다. 지금은 여행에 맛 들렸다. 하하.

10. 인터뷰가 끝나면 무엇을 할 예정인가. 맛집을 찾을 것인가, 여행을 계획할 것인가.
박희본 : 다음 인터뷰? 하하. 다 끝난 다음엔 ‘대세는 백합’ 회식이 있다. 서로 워낙 바쁘다보니 모이기 힘들다. 감독님도 워낙 월드와이드하게 준비하시는 게 많아서. 하하. 다 같이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한혜리 기자 hyeri@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