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이 노동개혁을 위한 ‘노·사·정 대타협’ 파기 카드를 꺼내들었다. 노동단체들의 이런 약속 불이행 움직임이 아주 놀라운 일도 아니다. 대타협안이라는 게 거창한 말과는 달리 구체적인 타결 내용은 사실상 없었던 데다, 그나마 국회의 비협조로 해가 바뀌도록 4개월간 지지부진했다.

다만 지금에 와서 노·사·정 파기를 논의한 한국노총의 노림수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석 달 남은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논란거리로 다시 부각시켜 정치적 흥정을 해보겠다는 속셈도 없지 않을 것이다. 정년 연장, 실업자 지원 확대, 각종 취업프로그램 강화 등 노조로선 챙길 건 챙긴 판에 일반해고나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 같은 고용노동 시장의 유연성을 제고시킬 진짜 개혁 과제는 어떻게든 피해보자는 일종의 꼼수로 보인다.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존재감을 한껏 과시하면서 고용노동부와 노사정위원회를 길들여보자는 계산도 없지않을 것이다. 지난해 ‘9·15 타협안’이 마치 대성공인 양 국내외를 돌며 한껏 고무된 김대환 노사정위원장이나 고용부를 상대로 얼마든지 비토를 놓을 수 있다는 시위다. 핵심 쟁점에 대해서는 ‘합의하자는 합의’였을 뿐인 대타협에 매달려온 고용부는 닭 쫓던 개꼴이 되고 말았다.

입법화 직전의 막판에서 타협안 파기를 거론하는 한국노총의 행태는 물론 비판받아 마땅하다. 애초 노사정위원회를 부정했던 민주노총보다 더 비난 받을 전략이다. 정부는 이런 한국노총의 실체를 분명히 봐야 한다. 고용부가 매년 30억원에 달하는 거액을 모호한 명분으로 이 기득권 노조에 지원해온 사실을 알고나면 노조조차 없는 90% 노동자들은 뭐라 할 것인가. 10억원이 넘는다는 한국노총의 본부 건물 리모델링도 정부 돈으로 이뤄진다고 들린다. 한국노총은 당연히 고용부의 산하단체가 아니다. 그런데도 고용부는 예산지원 등을 내세워 노조를 마치 산하단체처럼 관리해온 것이다.

노동개혁이 길을 잃고 헤매는 데는 이런 안이한 행정도 큰 원인이 됐다. 이제부터라도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라는 원칙에 입각한 노동개혁이어야 한다. 고용부가 각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