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주권을 행사할 새해는 그래서 값지다
현대 정치질서의 기본요소로 ‘국가의 힘’, ‘법치’, ‘국민에 대한 책임’을 얘기한, 프랜시스 후쿠야마와 왕치산 중국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의 대담을 봤다. 공산주의 일당독재로 국가를 운영한다 싶은 사람이 세계적 국가 정치질서와 중국의 힘을 거침없이 얘기하는 것이었다. 한국이 자랑스럽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성공했듯이, 그 나름대로의 체제로 굴기(起)의 거대한 성과를 창출한 데 대한 자신감일 것이고, 그들의 길도 성공하고 있다는 신념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국의 가슴 아픈 현실 때문이다. 설익은 민주주의의 미명 아래 쌓여 가는 병폐로 우리는 얼마나 크게 국가의 힘을 잃어 가고 있는가. 영혼과 철학과 사회정의를 잃은 어설픈 법치의 역설에 얼마나 많은 다수가 더 피해를 입어야 하는가. 입만 열면 국민을 위한다고 하면서 국민을 기만하고, 대다수에게 더 큰 부담을 지우는 주체와 제도를 언제까지 방치해야 하는가.

‘정당한’ 경제는 국력인데 지금까지 성공해 온 우리 경제가 이런 가슴 아픈 현실 아래서 몸살을 앓고 있다. 수출이 예전 같지 않고 내수 진작의 처방들도 잘 듣지 않는다. 10조원이 넘는 추경을 집행한 2015년 경제성장률은 2.7% 정도에 그쳤다. 앞으로 10년간 4년제 대학과 전문대 졸업자 중 79만여명이 취직하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최근 4년간 자동차, 전기전자, 화학, 해운업 등 주력산업의 매출증가율과 영업이익률은 미국, 중국, 일본 등에 한참 못 미치는 최하위권이다. 저물가와 저출산, 고령화 등이 경제시스템에 가하는 압박은 감내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이에 정부는 올 경제정책 방향으로, 실질성장률 향상과 더불어 건국 이후 처음으로 물가 올리기까지 고려하는 경상성장률을 관리하겠다고 발표했다. 경상성장률 상승은 고용증가, 생산성 향상, 물가 상승이 수반돼야 한다. 그러나 정부가 쓸 수 있는 재정, 통화정책 수단이 현재로서는 별로 없는 상황에서 이는 결코 녹록지 않은 목표다.

민간에서 해법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단연 ‘노동개혁’이다. 임금구조 왜곡에 따른 엄청난 임금격차, 기득권 사수 등의 고용구조 왜곡으로 인한 (청년)실업의 심화, 그 결과 뒤따르는 소비체계 파괴, 수요감소, 생산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깨야 한다. 통상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관계로 알았던 불평등이 현실에서는 ‘버는 자’와 ‘못 버는 자’ 사이의 깊은 갈등 한가운데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현상을 부추기고 심화시키는 일들을 우리는 무기력하고 무책임하게 쳐다만 보고 있다.

지난달 29일 어느 대기업 노조는 파업을 무기로 드디어 연봉 1억원이 넘는 ‘버는 자’ 최상의 위치에 올라 섰다. 다른 한편에서는 어느 날 1분 만에 뚝딱 통과한 면세점 관세법 개정안에 의해 대량 실직으로 이어지면서 ‘못 버는 자’들이 뚝딱 만들어져 버렸다. 가장 확실하게 경제민주화와 경제활성화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이런 파업을 금지시켜 엄청난 임금격차를 없애고, 정당한 법을 제정해 국민이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것이 사회정의다.

까맣게 잊었을지도 모르나, 하나만은 확실히 짚고 가자. ‘모든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따라서 책임도 국민에게 있다.’ 생명과도 같은 ‘주권’과 ‘책임’을 양손에 움켜쥐고, 버는 자와 못 버는 자의 갈등을 해결해야 할 주체는 결국 우리 국민일 수밖에 없다.

우리의 귀중한 주권을 행사할 새해는 그래서 값지다. 병신(丙申)년 새해의 의미를 새롭게 새기자. 원숭이 같은 기지와 재간으로 새로운 역사 위에 ‘한강의 기적’을 다시 쓰자.

강호갑 < 한국중견기업연합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