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는 공정거래위원회 판단에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의도적이 아닌 계열사 간 합병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불거진 주식 수 증가를 순환출자 강화로 판단해 강제로 해소토록 한 데 따른 것이다. 게다가 공정위의 이번 판단은 향후 대기업들의 사업 재편에서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한다.

재계 관계자는 “당초 삼성이 고의적으로 순환출자를 강화한 게 아니기 때문에 공정위가 문제 삼지 않을 것으로 보는 의견이 다수였는데, 공정위는 이를 엄격하게 해석했다”며 “향후 사업 재편 과정에서 대기업들이 고려해야 할 점이 하나 더 생겼다”고 말했다.

삼성그룹도 옛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으로 순환출자가 줄어들었다는 입장이었다. 다만 공정위의 공식 해석을 구하기 위해 해당 여부를 질의했다가 ‘순환출자 강화에 해당한다’는 답을 받았다. 공정위는 공정거래법 9조2항을 문구 그대로 해석한 것으로 평가된다. 2항은 순환출자 형성 및 강화를 금지하면서 ‘순환출자 회사 집단에 속하는 계열회사 간 합병에 의한 계열출자는 제외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하지만 옛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서 삼성물산은 고리 밖에 있던 회사를 합병하며 지배력이 강화된 것으로 해석돼 제재 대상으로 분류됐다.

향후 대기업은 계열사 합병 등에서 비슷한 사례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면 고려할 수밖에 없다.

지난 10월 말 현재 공정위가 지정한 62개 대기업집단 중 순환출자 구조가 있는 곳은 삼성, 현대자동차, 롯데그룹 등 모두 8곳이다. 순환출자 고리 수는 94개다. 롯데그룹이 67개로 가장 많고 삼성(7개), 영풍(7개), 현대차(4개), 현대산업개발(4개)이 뒤를 잇는다.

재계 관계자는 “향후 계열사 합병 등의 과정에서 존속법인과 소멸법인을 어떻게 할지 등에 따라 순환출자 관련 제재를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현석/황정수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