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니야. 아직 아무 통보도 못 받았어.”

오는 4일 삼성그룹 임원 인사를 앞두고 김모 삼성전자 상무는 1일 회사 안팎의 지인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이런 답변을 되풀이했다. ‘삼성전자 ××부문 퇴임임원 명단’이라는 ‘찌라시’에 자신의 이름이 올라서였다.

부하직원들은 하루종일 자신의 눈치를 봤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믿지 못하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옆방을 쓰던 몇몇 임원은 짐을 싸서 떠났다.

삼성이 임원 인사를 앞두고 크게 술렁이고 있다. 올해부터 최소 사흘 전 퇴임 대상자에게 해임 사실을 알려주기로 하면서 퇴임자 윤곽이 드러나고 있어서다. 삼성 관계자는 “예년엔 하루 전 오후 늦게 퇴임이나 승진 여부를 알려줬지만 올해부터는 최소 사흘 전 인사결과를 통보하기로 방침을 바꿨다”고 말했다.

사장단 인사가 발표된 이날도 수원 디지털시티 내 직원들은 짐을 싼 임원들의 명단을 메신저 등을 통해 교환했다. 일부 퇴임 임원은 후배들에게 퇴임의 변을 남기기도 했다. 이러다 보니 계열사별, 사업부별 퇴임 임원명단이 그럴듯하게 돌아다녔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38명,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23명, 삼성디스플레이 16명, 시스템LSI사업부 9명 등 명단엔 퇴임이 확정됐다는 임원의 이름과 직책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었다. 맞는 사람도 있고, 틀린 사람도 있었다. ‘아무개가 퇴임했다’ ‘아니다’는 입씨름도 곳곳에서 벌어졌다.

3년째 매출 하락세를 겪고 있는 삼성전자는 올해 임원 1300여명 중 20%가량을 줄일 것으로 알려졌다. 퇴임자가 300명에 육박할 것이란 얘기다.

삼성물산과 삼성중공업 등 다른 계열사의 퇴임 임원도 전체의 20% 안팎에 이를 것이란 소문이다. 임원 다섯 명 중 한 명이 회사를 떠난다고 할 수 있다. 회사 안팎의 술렁임은 임원 인사가 나는 4일까지 계속될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임원들에게 해임을 통보해야 하는 사장들도 괴롭다. 모 사장은 해임을 직접 통보한 임원들과 술자리를 함께한 뒤 “힘들다”고 토로했다. 짧게는 몇 년, 길게는 몇십년씩 같이 일했던 후배 직원들을 내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전설리/정지은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