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훈의 데스크 시각] 2016년, 죽느냐 사느냐
올해 달력도 이제 한 장을 남겨놓고 있다. 증권가는 잔뜩 주눅이 들어 있다. 내년 시장을 밝게 보는 전망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렇게 많은 걱정을 하면서 한 해를 보낸 시절이 또 있었을까 싶다. 제조업이 당면한 어려움은 필설로 이루 말하기가 어렵다. 위기가 벼락처럼 들이닥칠 것이라는 얘기가 많다. 기업들의 실적 부진과 구조조정 바람에 월급쟁이들은 난민들처럼 우리 경제의 한 모퉁이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다. 한 차례 광풍이라도 불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갈 신세다.

2016년은 말 그대로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다. 세계 경제의 방향타 역할을 하는 미국 금리와 중국 경제가 어떤 움직임을 보이느냐에 따라 상전이 벽해가 될 정도의 격변이 일어날 것이다. 미시적으로는 인구구조의 변화, 사업구조 재편과 구조조정 가속화 등에 따라 주력 기업(사업)의 세대교체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위기돌파는 기업의 숙명

내년도 한국 제조업의 최대 불확실성은 역시 중국이다. 중국 정부가 성장과 고용을 희생하면서 과잉설비로 몸살을 앓고 있는 조선 철강 석유화학 등에 대한 강력한 구조조정에 나설 경우 한국 기업들은 단기 수혜를 입을 수 있다. 하지만 그에 따른 글로벌 금융시장의 연쇄 충격파를 감당해야 한다. 반대로 중국 당국이 성장률 방어를 위해 ‘좀비기업’ 청산을 최대한 늦추면 한국 기업들의 고통은 그만큼 장기화될 것이다. 어떤 경우든 풍파를 피해 나가기가 어렵게 돼 있다.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저성장 시대에도 성장기업(산업)이 존재한다는 것, 누군가의 위기는 또 다른 누군가에는 기회라는 것이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주력 기업들이 실적 부진에 시달리기 시작한 것은 중국 제조업의 확장에 따른 것이었다. 반면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의 눈부신 약진은 중국의 소비 확대에 힘입은 것이었다. 한미약품은 저출산 고령화에 신음하는 소비기업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상상도 할 수 없던 규모의 신약 수출 대박을 터뜨렸다.

'고용 난민' 방파제 쌓아야

성장과 쇠퇴, 중심과 변방의 교체는 경제계의 수많은 스톡(stock)과 플로(flow)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만들어진다. 여기에 인식과 판단, 의사결정이라는 인간의 지력과 의지가 가세한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동태적 복합성이라고 부른다. 사전에 정해진 법칙은 있을 수 없다. 과거에 지나간 주식시장의 특정 사이클이 다시는 똑같은 커브로 나타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다.

위기를 경계하되 애써 과장할 필요는 없다. 경제는 부침을 반복한다. 역사상 사이클이 이를 증명한다. 국제유가가 높으면 높은 대로, 낮으면 낮은 대로 위기가 아니었던 적이 없다. 판을 흔들 수 있는 결정적 호기는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이다.

무엇보다 기업들이 힘을 내야 한다. 전열을 가다듬어 결사적으로 투자하고 싸워야 한다. 남 탓을 할 겨를도 없다. 이미 눈치 빠른 기업인들은 정부와 국회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정부는 무기력하고 야당은 잔혹하다. 아모레퍼시픽, 한미약품만으로는 일자리가 턱없이 모자란다. 삼성 현대자동차가 성난 파도 넘실대는 방파제를 힘겹게 막고 있는 사이에 새로운 일자리와 기업을 만들고 부흥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곧 들이닥칠지도 모르는 ‘고용 난민’들의 행렬을 막아낼 길이 없다.

조일훈 증권부장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