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아카데미에서 ‘윤동주’를 만나다

[생글기자 코너] 독서아카데미에서 '윤동주'를 만나다 등

지난 9월 강원도 교육청이 개최한 ‘청소년 독서 아카데미’에 다녀왔다. 올해로 3년째를 맞이하고 있는 이 프로그램은 춘천 소재 중·고등학교의 독서동아리가 같은 책을 읽은 후 그 책의 작가를 모셔서 책을 쓴 배경과 책 속에 담긴 이야기들을 듣고 서로 의견을 나누는 시간으로 진행된다. 올해 두 번째로 개최된 이번 강연에서는 ‘시인 동주’ 를 쓴 안소영 작가를 만났다.

강연에서 작가는 윤동주 시인의 일생과 그의 시 세계를 자세히 설명했다. 윤동주 시인은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1917년 태어나 1945년 2월, 해방을 보지 못하고 28세의 짧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일제 강점기의 어둡고 가난한 생활 속에서 고통 받는 조국의 현실을 누구보다도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고민한 젊은 시인이었다.

윤동주 시인은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학업을 계속하던 중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2년형을 선고받고 형무소 복역 중 건강이 악화되어 일본 땅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윤동주 시인은 지금 내 나이인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였는데 청소년기에 쓴 시는 어두운 분위기를 담고 있으면서도 평화를 지향하는 시들이 많다.

대학 이후에 쓴 시들은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별 헤는 밤>에서처럼 어두운 시대에서도 순수한 인생을 살아가려는 그의 내면세계를 표현한 것들이 많다. 많은 사람들이 윤동주 시인을 두고 일제 암흑기에 ‘순수’ 타령이나 하는 유약한 지식인으로 치부하기도 하지만, 내가 만난 ‘시인 동주’는 누구보다도 맑고 서정적인 글을 통해 일제에 항거한 힘 있는 ‘저항 시인’이었다.

2년째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지만 저자와의 만남은 늘 설레고 즐겁다. 저자에게서 직접 듣는 책 밖의 숨겨진 이야기, 그리고 책 속의 더 깊은 이야기는 책 읽기를 더 즐겁게 해준다. 이처럼 학생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독서 교육 지원 프로그램이 보다 다양해지고 활성화되었으면 한다.

김태훈 생글기자(남춘천중 2년) kevinkim2001@naver.com

우리 민족의 삶을 보여준 소설 ‘수라도’

[생글기자 코너] 독서아카데미에서 '윤동주'를 만나다 등

최근 독립투사들이 정부로부터 제대로 지원을 받지 못해 힘들게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뉴스가 자주 보도된다. 반면 일제강점기때 친일 행위를 했던 사람들의 대다수가 고위 공무원으로 진출했다는 뉴스도 자주 접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이 잘 반영된 소설이 바로 요산 김정한 선생이 쓴 ‘수라도’이다. 수라도는 김해에서 시집왔다 하여 가야 부인으로 불리는 인물을 중심으로 일어난 사건들을 통해 전개가 된다. 가야 부인의 시할아버지 허 진사는 간도로 떠나버렸고, 시아버지 오봉 선생은 엄정하고 추상같은 성격이지만 그녀에게는 자상했다. 남편 명호 양반은 내성적이었고, 시어머니는 집안 대소사를 며느리인 그녀에게 일임한다. 시집온 지 9년째 되던 해 3·1 만세운동이 터지고 만주에서 야학을 하던 허 진사는 유골이 되어 돌아온다. 둘째 시숙 밀양 양반이 일경(日警)의 총에 맞아 죽고, 오봉 선생은 유생들과 어울릴 뿐이다. 한편, 시어머니는 둘째 아들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불공드리는 일에 전념한다. 이를 보고 가야부인은 시어머니를 위한 절을 짓고자 하나 유학자이신 오봉 선생의 반대에 부딪힌다.

그러나 집념의 가야 부인은 사위를 통해서 미륵당을 짓기 시작한다. 이후 오봉 선생은 일제가 꾸민 ‘한산도 사건’에 연루돼 투옥된다. 절개를 굽히지 않던 그는 고문에 시달린 끝에 출옥 후 사망한다. 장례를 치르고 난 가야 부인은 미륵당을 완성한다. 이후 미륵당은 학도병이나 처녀 공출등으로 아들, 딸, 남편, 손자녀들을 억울하게 빼앗긴 아낙네들의 고통을 치유해주는 공간이 된다. 어느 날 애국 반장이 찾아와 딸처럼 키우던 계집종 옥이가 정신대로 끌려갈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에 가야 부인은 홀아비가 된 사위와 옥이의 결혼식을 미륵당에서 치러 위기를 모면하게 된다.

광복 후 친일파였던 이와모도 참봉의 아들은 국회의원이 되어 득세하지만, 가야 부인의 가세는 점점 기울어 간다. 막내아들 석이를 부르며 그녀는 숨을 거둔다. 소설은 두 극단의 인물을 선과 악으로 대비한다. 친일파 중에 알거지가 된 사람도 많다. 독립운동가 중에 후손이 잘 돼 부자가 된 사람도 있다. 이런 전형적인 소설은 시대를 잘 대변하다고 할 수 없다. 친일파 후손들 중 여전히 잘 사는 사람도 물론 적지 않다. 친일 행위를 하면서도 독립운동에 자금을 댄 사람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광복 후 70년이 지났다. 왜 일본에 점령당했는지도 생각할 때다.

전호림 생글기자(금성고 2년) bngj6710@hanmail.net

오디세이를 읽고…오디세우스의 실수에서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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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그리스 로마 신화를 어릴 적 만화로 읽었던 적이 있다. 그 책에 등장하는 오디세우스는 어린 내가 보기에도 대단한 영웅이었다.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주역이지만 포세이돈의 미움을 사 온갖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집에 돌아와 그의 가족과 왕좌를 지킨 오디세우스는 용기와 지혜, 힘과 리더십을 겸비한 최고의 남자였다. 나는 오디세우스를 이렇게 선망의 대상으로만 생각했다. 호머의 오디세이를 읽으면서 오디세이도 만화 ‘오디세우스’처럼 온갖 영웅담으로 가득 차 있는 줄 알았다. 그의 용감함을 찬양하는 내용을 기대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였다.

오디세이에 나오는 그는 용감한 전쟁의 영웅이었지만, 생각보다 실수투성이었다. 여러 번 순간의 판단 오류나 조심성 없는 행동으로 셀 수 없이 많은 부하들을 잃었고, 자기 자신도 여러 번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여러 번 실수를 저지른 후에도 집에는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던 오디세우스의 무용담은 영웅의 것이었지만, 정말 아쉬웠던 점은 그에게서는 자신의 실수를 반성하는 모습도, 실수에서 깨달음을 얻는 모습도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그리고 책을 덮은 뒤에도 오디세우스에게 자신의 실수에서 배움을 얻을 수 있는 지혜가 있었더라면 여정도 덜 고난하고 더욱 많은 부하들도 집으로 함께 올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만 머리에 맴돌았다.

실수를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실수에 무한정 관대한 사람도 없다. 우리는 실수를 하지 않고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내려고 노력하고, 혹시 실수를 할까 마음을 졸인다. 하지만 실수를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완벽한 사람은 없고 누구나 실수를 저지르기 마련인데, 이 때 자신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한다면 발전이 있을 수 없다. 실수 후에는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잘 곱씹어보고, 실수를 통해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발견하고 채울 수 있는 지혜를 갖자. 오디세우스와 달리 우리 모두 실수에서 배움을 얻을 수 있는 지혜를 가졌으면 좋겠다.

김민경 생글기자(분당대진고 2년) ssacoz@naver.com

이태원 살인사건의 전말은 밝혀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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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밤 10시, 여자친구를 집 까지 데려다 주려던 한 대학생이 이태원 햄버거 가게 화장실 안에서 흉기로 수차례 찔려 살해당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22살. 자신의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살았던 청년의 나이다. 그가 무참하게 살해된 이유는 과연 무엇 때문이었을까. 가해자들은 그저 자기는 목격자일 뿐이라고 서로가 직접 찌른 가해자가 아니라고 발뺌했다.

가해자들의 국적이 미국이라는 이유만으로 형벌이 미뤄지고 또 미뤄지는 건 과연 올바르게 바라봐야 하는 관점일까? 속은 비어져만 있고, 껍데기만 남아버린 정의는 우리를 더욱 분노케 한다. 죽은 자는 있으나, 죽인 자는 없다는 이 모순적인 사건의 결말은 아직 미궁속이다. 2009년에 개봉된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으로 큰 논란을 빚으며 재조명이 되자 검찰은 다시 패터슨을 수배했다. 패터슨은 증거인멸 혐의만 적용되어 고작 7개월을 복역하다 8·15특사로 풀려난 뒤 바로 미국으로 도주했다. 사건발생 18년 만에 패터슨은 한국으로 송환됐고 최근 한국 법정에 섰다. 묻힐 뻔 했던 이 사건이 매스 미디어(불특정 대중에게 공적 ·간접적 ·일방적으로 많은 사회정보와 사상을 전달하는 신문 ·TV ·라디오 ·영화 ·잡지 등이 대표적임)를 통해 많은 대중들에게 알리지게 됐고, 여론의 비난으로 다시 사건이 재조명되는 것이 진정한 매스미디어의 효과이다.

검찰의 부주의는 18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유가족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만들었다. 재조명이 된 지금 중요한 요소는 1997년 사건이 있었던 당시로 돌아가 신중하고 꼼꼼히 살펴보고 사건의 실마리가 담겨있는 퍼즐조각들을 맞춰 나가야 한다.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누군가의 동생이었고, 누군가의 진정한 친구였던 그가 차가운 시신이 되어버렸다. 이 사건은 우리사회가 분명하게 집고 넘어 가야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장다연 생글기자(동명여고 2년) shori9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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