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커피는 단 하나뿐"…글쓰기보다 커피 먼저 배운 에스프레소 명가의 후계자
커피에 대한 이탈리아 사람들의 자부심은 각별하다. 일단 많이 마신다. 이탈리아의 1인당 연간 커피 원두 소비량은 5.9㎏. 커피 한 잔에 원두가 7g 들어간다고 했을 때 1년에 한 사람이 800잔 이상의 커피를 마시는 셈이다. 세계 평균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인 1.3㎏의 다섯 배가 넘고, 한국(1.8㎏)은 물론이고 미국(4.1㎏)보다도 커피를 많이 마신다.

커피를 진하게 내린 에스프레소의 ‘종주국’이란 자부심도 강하다. 이탈리아 현지에선 ‘스타벅스’ ‘커피빈’ 같은 세계적인 커피 프랜차이즈를 찾기 힘들다. 이탈리아 커피의 맛을 앞세운 자국 커피 프랜차이즈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리카페’가 대표적이다. 안드레아 일리 일리카페 회장은 할아버지가 세운 이 회사를 3대째 물려받아 이탈리아 내 시장 점유율 1위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최고의 커피 꿈꾼 화학도

일리 회장은 1964년 이탈리아 북부 항구 도시인 트리에스테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인 프란체스코 일리가 1933년 일리카페를 처음 시작한 도시다. 프란치스코 일리는 헝가리 출신으로 1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에 정착했다. 최초로 현대식 에스프레소 기계를 발명한 인물이다. 할아버지에 이어 아버지 에르네스토 일리 역시 일리카페를 경영했다. ‘에스프레소 선교사’로 불리며 커피 문화를 퍼뜨린 아버지 밑에서 자란 일리 회장은 자연스레 커피에 관심을 가졌다. 글쓰기보다도 커피 맛을 먼저 배웠다. 창고에 있는 커피 원두를 가지고 노는 게 일상이었고, 학생이 된 뒤엔 방학마다 용돈을 벌기 위해 공장에서 일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시작된 커피에 대한 관심을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이렇게 표현했다. “네 살 때 어머니가 부엌에서 마시던 커피를 맛 본 뒤부터 커피에 대한 동경이 생겼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오토바이를 사기 위해 커피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을 뿐 또래와 다를 것 없는 생활을 했지만 커피에 대한 열정은 언제나 마음 깊이 숨어 있었다.”

인생을 커피에 헌신한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일리 회장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것도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전공을 따라서였다. 최고의 커피를 생산하려면 화학을 전공해야 한다는 게 가문의 철학이었다. 커피 원두를 볶고, 가루 내고, 커피를 추출하는 모든 과정은 커피콩의 화학적 변화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일리 회장 역시 화학을 공부하면서 커피 전문가로 성장했다. 1995년에는 《에스프레소: 품질의 과학》이라는 책을 썼다. 책에는 커피 재배법부터 생산과정, 커피 원두 제조부터 포장까지 다양한 내용을 담았다. 커피를 배우려는 사람들 사이에선 교과서처럼 읽히는 책이다.

“가장 맛있는 커피는 오직 하나”

일리 회장이 회사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부터다. 일리카페 품질관리 부서 매니저로 일을 시작했다. 입사 이후 고속승진이 이어졌다. 5년 뒤 부사장으로, 이로부터 3년 뒤 지금의 회장 자리에 올랐다. 기업공개를 하지 않고 가족경영을 이어가는 일리카페의 후계자여서 가능했다.

일리 회장의 경영철학은 놀랄 만큼 단순하다.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파는 것이다. 시대 변화에 따라 어설프게 다른 회사의 전략을 따라 하지 않는다. 설립 이후 변하지 않은 회사의 전략을 유지하는 게 일리 회장의 철학이다.

누구나 다 아는 전략이지만 실행은 다른 문제였다. 일리 회장은 과학적인 연구가 최고의 커피를 만드는 기반이라고 봤다. 1997년 이탈리아에 아로마랩을 지었다. 다양한 커피향을 수집해 최상의 커피향을 연구하는 기관이다. 커피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 대학과도 협력한다. 2000년에는 브라질 상파울루대와 협력해 ‘유니버시다데 일리 드 카페’라는 커피 전문대학을 세웠다. 커피 원두의 재배·생산·관리 등은 물론 카페 서비스까지 가르치는 대학이다.

최고의 커피만을 판매한다는 창업자 정신은 그대로 이어받았다. 프란체스코 일리카페 창업자는 커피 품질 관리에 예민했다. 자신이 손님인 척 위장하고 들어간 카페에서 바리스타가 오늘은 기계 상태가 좋지 않아 커피를 팔 수 없다고 말하자 나중에 상을 주었을 정도다.

일리 회장은 한 가지 블렌드의 커피만 판다는 전략을 이어갔다. 최고의 커피는 단 하나뿐이라는 철학 때문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만큼이나 한 가지 원칙을 지키는 것 역시 어려웠다. 다양해진 소비자 입맛에 맞춘 블렌드를 선보여야 한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그러나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최고의 맛이라는 본질에 충실하면 소비자들이 알아줄 것으로 판단했다.

이런 일리 회장의 전략은 적중했다. 일리카페의 커피는 다른 브랜드보다 두 배 정도 비싸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그가 회사를 처음 맡았을 때만 해도 일리는 29개국에 진출한 기업이었지만 지금은 한국을 비롯한 144개국 10만여개 점포를 가진 글로벌 커피 프랜차이즈로 성장했다. 순이익도 130% 이상 늘었다. 사업 분야도 카페에서 식당, 직장 등에 커피를 공급하는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됐다. 세계 최대 커피 시장인 미국 진출도 노리고 있다. 기존 미국 프랜차이즈와 다른 고급화 전략으로 시장의 틈새를 파고든다는 계획이다.

나수지 기자 suj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