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헬조선? 너에게 묻는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섬 울릉도. 별을 보며 자고, 아침 등교 전 고기를 잡던 소년은 유명 고등학교에 지원했다가 낙방해 후기인 울릉수산고에 진학했다. 3학년에 올라갈 무렵 ‘이래서는 평생 배나 타겠구나’라는 생각에 무작정 대구로 향했다. 독서실 의자에서 하루 종일 공부하고 잠까지 자던 시절, 발이 부어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그러나 경북고 입시에 떨어져 후기로 대구 대륜고에 들어갔다. 5년간 고교를 다닌 뒤 치른 대학 입시에서는 의대에 불합격해 역시 후기로 한양대 공대에 진학했다.

1978년 졸업 후 삼성 공채에 합격했지만, 다들 원하는 삼성물산이나 삼성생명이 아닌 ‘신생’ 삼성전자로 발령받는다. 바다를 보며 자라 눈 하나는 끝내주게 좋았다는 그는 입사 몇 년 만에 안경을 썼다. 이를 악물고 밤새워 TV 회로도를 그렸기 때문이다. “환경은 열악하고, 재능도 부족하며 밀어줄 사람도 없었다”던 그는 ‘악으로 깡으로’ 매달려 입사 28년 만인 2006년 삼성 TV를 세계 1위로 만든다. 윤부근 삼성전자 사장 얘기다.

독하게 매달리면 이뤄진다

업계 맞수인 조성진 LG전자 사장도 만만치 않다. 고교 진학보다 가업(도자기)을 이으라던 아버지의 권고를 뿌리친 그는 용산공고를 나와 1976년 금성사(현 LG전자)에 입사한다. 고졸 학력 탓에 번번이 밀려 첫 직급인 기정보(지금의 과장급)가 되는 데 10년이 걸렸다. 남들은 임원이 되던 입사 20년 만에 부장을 달았다. 하지만 입사 37년간 세탁기 한길만 판 그는 1998년 내구성을 높이고 소비전력과 소음은 낮춘 다이렉트드라이브(DD)모터를 개발했다. 독일에서 20년 수명인증을 받은 이 모터는 세탁기 세계 1위를 이뤄낸 원동력이 된다. 그 집념과 실력을 인정받아 2012년 고졸 출신 첫 LG전자 사장이 된다.

이런 독종들이 이끄는 한국 가전은 글로벌 업계를 선도하고 있다. 삼성 세탁기 버블샷애드워시는 출시 6주 만에 국내 판매 1만대를 넘었다. 세탁기 문에 창문을 내 세탁 중에도 빨랫감을 더 넣을 수 있는 제품이다. 드럼세탁기 밑에 통돌이세탁기를 단 LG 트윈워시도 잘나간다. 세탁기로는 이례적으로 비행기에 실어 미국에 공급할 정도다. 제품을 빨리 달라는 유통업체들의 성화 때문이다.

용기가 부족한 거다

‘헬조선’이란 말이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이다. ‘흙수저’란 말도 떠돈다. 조선시대 계급사회에 현 사회를 빗대고, 가난한 부모를 탓하는 말이다. 저성장 시대, 예전보다 개천에서 용 나기 어려워진 건 맞다. 대학을 나오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고, 대기업 입사 경쟁률은 치솟았다. 노동개혁 등 정부가 바꿔야 할 것도 많다. 하지만 모텔 청소부로 시작해 지난 10년간 매년 150% 이상 성장해온 ‘야놀자’ 앱(응용프로그램)의 이수진 대표, 가구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수억원의 빚을 졌지만 ‘배달의민족’ 앱으로 재기한 (주)우아한형제들의 김봉진 대표 같은 이가 있다. 또 9개월간 쇼팽만 생각하며 연습해 쇼팽콩쿠르에서 우승한 조성진도 있다.

37주째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책 《미움받을 용기》엔 “우리는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그저 용기가 부족한 거다”라는 심리학자 아들러의 말이 나온다. 주어진 환경을 탓하는 건 변화를 두려워해서 선택한 거짓말이란 얘기다. 청년들이여, 헬조선 함부로 말하지 마라. 너는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김현석 산업부 차장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