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유럽 공습에
도자기 시장 안방 내줄 판
지난 11일 오후 서울 남산의 한 행사장에선 미국 주방용품업체의 행사가 열렸다. 그릇 브랜드 ‘코렐’로 유명한 월드키친이 리비어, 시카고 커틀러리 등 다양한 제품을 한국에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코렐이 국내에서 선보인 것은 1986년. 도자기 식기에 익숙하던 한국 소비자에게 신소재 ‘비트렐 유리’를 사용하고 가격까지 저렴한 코렐 그릇은 획기적이었다. 금세 한국 시장을 잠식했다. 그릇 분야 1위가 됐다. 칼 워쇼스키 최고경영자(CEO)는 “그릇뿐 아니라 한국의 모든 주방용품 분야에서 1위를 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날 저녁, 국내 도자기 제조업계에 ‘비보’가 날아들었다. 73년 역사의 국내 최고(最古) 도자기 제조업체 행남자기가 팔렸다는 소식이었다. 행남자기 매각은 국내 토종 도자기업체가 처한 현실을 보여준다. 고가 시장에서는 유럽 브랜드에 밀리고, 저가 시장에선 중국산 등에 치인다. 미국·유럽 브랜드가 ‘한국형 제품’으로 파고들어 토종 도자기업체들은 사면초가다. 한국 도자기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렸던 고려청자, 조선백자의 후예들이 흔들리고 있다.

○시장 60% 外産이 점유

행남자기 매각 후폭풍…흔들리는 고려청자·조선백자 후예들

국내 주방용품 시장의 규모는 5조원대. 이 중 도자기 식기 시장은 3000억원에 불과하다. 행남자기 한국도자기 등 주요 도자기업체의 업력은 70년이 넘는다. 노하우와 기술력도 상당하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미국과 유럽, 중국 등 해외 주방용품 회사들이 국내 도자기 시장을 급속히 잠식하고 있다.

국내 ‘빅3’로 불리는 한국도자기 행남자기 젠한국 등 3사는 3000억원 규모의 도자기 시장에서 지난해 1000억원대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도자기 종주국’인 한국의 외국산 점유율은 60%를 넘었다.

○‘한국 맞춤형’ 외국 업체의 공세

덴마크 왕실의 고급 식기 브랜드 로열코펜하겐은 2년 전 한식 그릇을 내놨다. 로열코펜하겐이 특정 국가의 식생활에 맞춰 제품을 선보인 것은 한국이 처음이다. 이들에게 한국은 덴마크와 일본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시장이다.

코렐은 한국인의 식(食)문화를 연구해 내놓은 한국형 밥공기와 국대접 코리아웨어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밥공기는 기존 그릇보다 4분의 1을 줄였고, 국대접은 10도 오목하게 해 국물이 빨리 식지 않게 했다.

○토종 업체의 ‘몸부림’

벼랑 끝으로 내몰린 도자기 회사들이 최근 내놓은 타결책은 ‘제품 고급화’와 ‘사업 다각화’다. 한국도자기는 최고급 브랜드 ‘프라우나’에 기대를 걸고 있다. 소뼈를 갈아 원료로 사용하는 일반 본차이나보다 세 배 강한 최고급 ‘파인 본차이나’ 소재를 썼다. 제품 표면엔 수작업으로 고가의 스와로브스키 보석을 부착했다. 미국 영국 중국 러시아 등에 본격 수출한다.

젠한국은 도자기를 기반으로 한 다각화에 승부를 걸고 있다. 가전업체 키아스와 손잡고 최근 세라믹 블루투스 스피커 ‘모브원’을 내놨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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