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촉통 전 싱가포르 총리(오른쪽)와 오연천 울산대 총장이 4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파르나스호텔에서 열린 ‘글로벌 인재포럼 2015’에서 ‘변화하는 사회, 변화하는 교육’을 주제로 대담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고촉통 전 싱가포르 총리(오른쪽)와 오연천 울산대 총장이 4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파르나스호텔에서 열린 ‘글로벌 인재포럼 2015’에서 ‘변화하는 사회, 변화하는 교육’을 주제로 대담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고촉통 전 싱가포르 총리는 4일 열린 ‘글로벌 인재포럼 2015’에서 “성공하고자 하는 국가는 교육을 최우선 순위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모든 국가가 교육을 중요시하지만 ‘교육은 움직이는 자동차의 타이어 갈기와 같아’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고 전 총리는 매우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면밀한 검토를 거친 뒤에 교육 정책을 시행해야 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어떤 도로를 주행하게 될지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능력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 전 총리는 “중국에는 ‘나무를 기르는 데는 10년이 걸리지만, 사람을 기르는 덴 100년이 걸린다’는 말이 있다”며 “국가의 미래를 짊어질 인재를 기른다는 생각으로 장기적이고 일관된 교육 정책을 펴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수준별 교육으로 중학교 중퇴율 낮춰

싱가포르가 영국의 지배를 받던 1941년 태어난 고 전 총리는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 탈퇴부터 이후의 고도 성장기까지 싱가포르의 전 역사를 옆에서 생생히 지켜봤다.

그는 “1960년대만 해도 싱가포르인의 문맹률이 50%에 달했고 국립 산부인과병원에선 한 해 4만명이 태어나 ‘세계에서 가장 큰 아기 공장’이란 얘기까지 듣던 시절이었다”며 “그래도 더 많은 아이를 가르치기 위해 한 달에 하나씩 학교를 세우고, 교사들을 매일 오전에 훈련해 오후에 아이들을 가르치게 한 것이 싱가포르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미래를 위해서라면 파격적인 교육 정책도 마다하지 않았다. 싱가포르의 경우 수준별 교육과 영어 공용화가 대표적 예다. 그는 “학교만 빠르게 늘려가다 보니 중퇴율이 급증했다”며 “왜 아이들이 학교를 그만두는지 알아봤더니 우수한 학생들은 수업을 지루해하고, 조금 떨어지는 아이들은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원인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도입한 게 수준별 교육이다. 1970년대 6%에 달했던 초등학교 중퇴율은 1997년 0.5%로 떨어졌고, 중학교 중퇴율도 같은 기간 13%에서 3.3%로 하락했다. 그는 “아직 어린아이들에게 너무 가혹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많았다”며 “하지만 수준별 교육을 통해 조금 못 했던 아이들의 학업 성적이 올라가고, 또 모든 과목에 차별없이 이를 적용하면서 비판은 점점 줄어들었다”고 했다.

영어 공용화는 싱가포르의 세계화를 앞당기는 동시에 다민족으로 이뤄진 싱가포르에 국가 정체성을 부여하는 계기가 됐다. 그는 “독립 초기만 해도 중국인 자녀는 중국어를 쓰는 화교 학교, 말레이인 자녀는 말레이어를 쓰는 학교, 인도인은 타밀어를 쓰는 학교에 나눠 다녔다”며 “어떤 민족의 모국어도 아니었던 영어를 도입하고 나서야 싱가포르는 하나의 국가가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낮은 성장 시대에 평생 교육 강조해야

고 전 총리는 “싱가포르의 교육은 지금도 변화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지식과 혁신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고, 세상은 더욱 빠르게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까지의 교육은 학교를 졸업하고 한두 개의 기업에서 평생 일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하지만 ‘철밥통’이란 개념은 이제 깨졌고, 기대 수명이 늘어나면서 더 오래 일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더 많은 고등교육을 제공하는 것은 해법이 아니라는 게 그의 지적이다. 세계 각국의 성장률이 7%를 가뿐히 넘던 고도 성장기를 지나면서 2~4%로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경제가 빨리 성장할 때 급증했던 대학 정원 때문에 싱가포르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을 못하는 사람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싱가포르의 해법은 ‘기술 직업 교육’과 ‘평생 교육’이다.

고 전 총리는 또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 정책이 바뀌었다면 지금의 싱가포르는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좌와 우, 진보와 보수 등 이런 복잡한 정치적 문맥 때문에 정권을 잡은 당은 기존의 교육 정책이 좋더라도 이를 바꿔버릴 수밖에 없다”며 “10년은 기다려야 교육정책의 효과가 나타나는 만큼 장기적인 시각에서 정책을 세우고 시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