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간 인수합병(M&A) 등 구조조정이 노조 반대로 무산되거나 지연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기업의 자발적인 구조조정조차 이런 식이면 정부가 추진하는 산업 구조조정 역시 제대로 이뤄지기 힘들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지금 상태로는 생존을 담보하기 어려운 ‘좀비기업’이 한둘이 아니어서 이대로 가면 기업도, 노조도 공멸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현장에서 벌어지는 양상은 매우 심각한 지경이다. 기업 간 어렵사리 사업재편이 시도되고 있지만 성사에 이르기까지는 그야말로 산 넘어 산이다. 삼성그룹이 지난주 롯데에 넘기기로 한 화학분야 사업 매각 건만 해도 그렇다. 지분인수를 환영한다고 한 삼성정밀화학 노조와 달리 삼성SDI 케미컬부문 여수공장 직원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하는 등 벌써 반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투쟁의 강도와 일정에 따라 매각 일정에 차질이 빚어질 게 뻔하다. 이에 앞서 한화그룹이 삼성으로부터 사들인 한화종합화학은 지금 파업과 직장폐쇄라는 홍역을 치르는 중이다. 자칫 M&A 효과를 다 날릴 판이다. 채권단에 의한 구조조정도 마찬가지다. 산업은행이 매각을 위해 예비입찰을 집행한 대우증권에서는 노조가 아예 다른 증권사 노조와 연대투쟁에 나섰고, 수조원의 적자로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에선 노조가 임금인상 등을 고집하면서 구조조정이 늦춰지고 있다. 어쩌다 노조 때문에 구조조정을 못 한다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 건가.

앉아서 죽자는 것도 아니고 무작정 구조조정을 반대하는 노조라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노조가 어떤 무리한 요구를 내놔도 먹힌다고 생각하게끔 한 사회적 환경이 더 큰 문제다. 노동 관련법부터가 노조의 횡포를 ‘보장’하는 독소조항이 수두룩하다. 법정에서도 거의 무조건 노조가 이긴다고 생각하니 주저할 이유가 없다. 여기에 시끄러워서 좋을 게 없다며 위로금이다, 뭐다 하며 적당히 넘어가려는 CEO들도 적지 않다. 이러니 노조가 가만히 있을 리 만무하다. 결국 서서히 구조조정이 불가능한 사회적 환경이 이뤄진 것이다. 정치권은 소위 ‘원샷법’과 노동개혁을 미적대고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