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제조 공급망 혁신으로 한때 세계 PC시장 제패…이젠 클라우드 기업 '승부수'
“안녕하세요. 휴스턴 포스트를 구독하실 생각이 있으신가요?”

한여름이었다. 전화기 앞에 앉아 무작위로 신문을 볼 생각이 있느냐고 묻는 일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고교생의 여름 아르바이트는 기껏해야 친구들과 놀러갈 비용을 마련하려는 것 아니던가.

그렇지만 이 까만 곱슬머리 고교생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는 어떻게 하면 휴스턴 포스트의 구독자를 많이 확보할 수 있는지 실마리를 잡아가는 참이었다. 처음엔 무작위로 전화를 돌리는 텔레마케팅에 불과했지만 그는 구독을 승낙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패턴이 있다는 것을 시나브로 깨달았다. 일정한 지위를 얻고 싶어하는 사람들이었고, 지역적·사회적인 특징을 갖고 있었다. 이 인구군을 타깃으로 삼기 위해 그는 결혼식 참가자나 모기지 신청서에 적힌 신상정보를 수집했다.

단순한 무작위 텔레마케팅을 벗어나 목표고객을 정확히 겨냥하자 신문 구독률은 훨씬 높아졌다. 그해 그는 1만8000달러를 벌어들였다. 그의 역사나 경제교사 연봉보다 더 많았다.

어릴 때부터 강했던 사업가 기질

미국의 컴퓨터 제조업체 델을 설립한 마이클 델 회장은 1965년 미국 휴스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알렉산더 델은 치과교정 전문의였고 어머니 로레인 샬럿은 주식중개인이었다. ‘델’이라는 이름은 이디시어로 ‘계곡’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독일계 유대인인 이들은 마이클이 태어나기 전 미국으로 이주해 정착했다.

유대인에게 장사꾼 기질이 있다는 선입견은, 마이클 델 같은 사람 때문에 심화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정말로 어릴 때부터 돈 버는 데에, 특히 컴퓨터로 돈 버는 데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다.

10대 초반부터 파트타임 일자리에서 번 돈을 주식과 귀금속에 투자했다. 자기 사업을 빨리 하고 싶어서 8세에 고교 검정고시를 치러봤을 정도였다. 첫 계산기를 7세에 샀고 15세에는 애플Ⅱ 컴퓨터를 구입했다. 그리고 그 애플 컴퓨터는 사자마자 분해됐다. “안에서 어떻게 돌아가는지 너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검정고시에는 성공하지 못해 메모리얼고교에 진학했고 이곳에서 교사의 연봉 이상을 벌어들이는 재간을 발휘했다.

텍사스대에 입학한 뒤로 그의 재능은 꽃폈다. 자취방에서 개인용컴퓨터(PC)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키트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이윽고 텍사스 주정부에 부품을 공급할 수 있는 자격을 따냈다. 컴퓨터 매장이라곤 하나도 없이, 그저 살던 집 주소(도비센터 방번호 2713)를 적어냈다.

1984년 1월, 19세 청년 델은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PC를 매장에서 간접적으로 팔 것이 아니라 직접 고객에게 팔 수 있다면 엄청난 사업 기회가 있을 것 같았다. 처음에는 ‘피시즈 리미티드(PC’s limited)’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설립했다가 4개월 뒤 ‘델 코퍼레이션’으로 바꿨다. 컴퓨터 거물 델 제국의 시작이었다.

공급망 혁신으로 ‘델 제국’ 만들어

자본금 1000달러로 시작한 사업은 처음엔 초라했다. 북부 오스틴에 정식으로 사무실을 냈는데 정말 필요한 최소한의 인원만 있었기 때문에 번듯한 느낌은 나지 않았다. 마이클 델은 “스크루드라이버를 든 세 명의 남자가 커다란 책상에 앉아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렇지만 점차 사업은 번성했다. 만들어놓은 컴퓨터를 매장에서 고객에게 파는 구식 공급사슬 대신 고객의 주문을 즉각 반영해 컴퓨터를 제조하는 방식으로 효율성을 크게 높였다. 대형 매장을 잔뜩 거느리고 종업원과 재고를 관리하느라 씨름하는 대신 고객에게 직접 물건을 배송하는 유통 시스템으로 업계의 혁신을 주도했다.

8년이 지난 1992년, 미국 경제잡지 포천은 500대 기업을 발표했다. 이 가운데 가장 어린 CEO로 꼽힌 사람이 마이클 델이었다. 당시 스물 일곱살이었다. 그로부터 4년 뒤에는 인터넷으로 제품을 팔았다. 서버 사업도 시작했다.

EMC 인수…또 다른 시작

하지만 스마트폰과 태블릿 등이 등장하면서 컴퓨터 수요는 2000년대 들어 급감했다. 중국 등 경쟁자들도 늘었다. 창업자 델은 2013년 자신의 돈과 사모펀드 실버레이크의 돈을 합해 244억달러(26조원)를 들여 자발적으로 회사의 상장을 폐지한다. 주가가 자꾸 떨어지니까 투자자들이 부양책을 내놓으라고 압박하는 것이 싫어서였다. 그는 델이 기업공개(IPO) 이전의 스타트업이 된 셈이라고 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스타트업 기업이 됐다”면서 스타트업과 기업가 정신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그는 “이사회 멤버가 3명뿐”이라며 “회사에 관한 중요한 결정을 단 1분 만에 내릴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고 했다.

이후 2년간 델의 실적은 정확하게 공개되지 않았다. 시장 상황이 별로였기 때문에 썩 좋지는 않았을 것으로 월가에선 추정한다.

그러나 이대로 가만히 늙어갈 마이클 델이 아니다. 그는 최근 정보기술(IT) 역사상 최대 인수합병(M&A)을 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데이터 저장과 클라우드 컴퓨팅 등에 강점이 있는 IT 회사 EMC를 670억달러(약 76조6000억원)에 사들이기로 했다. 이걸 위해 그가 지긋지긋하게 여겼던 월가에서 다시 대규모 자금을 끌어들여야 할 전망이다. EMC를 이끌어온 조 투치는 합병을 마친 뒤 물러나고 마이클 델이 합병 후 회사의 회장직을 맡을 예정이다.

이 승부수가 통할지 안 통할지 아직 판단하기는 이르다. 경쟁사 휴렛팩커드(HP)의 멕 휘트먼 CEO는 델과 EMC가 대규모 합병을 하느라고 경쟁에서 되레 뒤처질 것이라고 했다. 경쟁자의 악담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대규모 M&A가 가진 필연적인 리스크이기도 하다. 성패는 EMC의 기술력과 신사업을 얼마나 빠르게 델이 흡수해서 자기 것으로 만드느냐에 달렸다. 이 많은 일을 겪고도, 마이클 델은 아직 50세에 불과하다. 얼마든지 성공도 실패도 더 겪을 수 있는 나이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