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금융 전면 개편] 10년 넘은 기업에 쏠린 정책금융, 창업기업으로 돌린다
정부가 정책금융기관의 역할 재편을 추진하는 것은 정책금융 규모가 과도하게 큰 데다 부실기업 등에 자금이 흘러가면서 산업 생태계를 오히려 교란하는 부작용이 잇따르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구정한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8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정책금융 역할 강화방안’ 세미나 주제 발표에서 “과거와 달리 정책금융이 성장잠재력 확충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건전한 기업 생태계 조성 및 유지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도 많다”고 꼬집었다. 이날 구 연구위원은 국내총생산(GDP)대비 보증과 대출을 포함한 정책금융 비중은 한국이 7.33%로 강소기업이 많은 독일의 0.99%에 비해 7배나 높다고 지적했다. 미국(0.45%) 영국(0.03%) 캐나다(0.83%) 등도 정책금융 비중은 1% 미만이다.

이에 따라 금융위원회는 정책금융 규모 동결 및 업력 10년 이상으로 성숙기에 진입한 기업에 대한 지원 축소에 초점을 맞춘 정책금융 개선안을 마련하고 있다. 대신 창업기업 지원을 확대할 방침이다.

○10년 이상 장기보증 기업 축소

금융연구원 등에 따르면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산업은행, 기업은행에서 정책금융 지원을 받은 기업 중 업력이 10년 이상인 곳이 절반 이상이다. 반면 업력 5년 미만의 창업기업과 5년에서 10년 사이의 성장기 기업 지원은 각각 25%를 넘지 못하고 있다. 또 신보와 기보의 전체 보증액 60조원 가운데 10년 넘게 보증을 지원받고 있는 기업에 대한 실적이 15조원으로 25%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보증대출 금리는 연 3.5% 안팎으로 담보대출(연 4% 안팎)이나 신용대출(연 5% 안팎) 금리보다 낮다.

금융위는 보증으로 연명하는 한계기업을 단계적으로 퇴출시킬 방침이다. 창업기업 보증을 늘리기 위해 10년 이상 보증을 계속 이용하면 보증료를 인상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현행 보증료는 기업 신용등급 등에 따라 보증금액의 최소 0.6%에서 최대 2.5%다. 장기 보증이용 기업은 보증료를 더 올려 보증 혜택이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또 신보와 기보의 보증재원을 창업계정, 성장계정으로 나누고 계정별 보증 목표를 상세하게 부여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창업기업에 대해선 기업 대표이사의 연대보증 면제 범위를 확대하고 보증비율을 현행 85%에서 상향 조정할 계획이다.

보증기관이 각 기업에 개별보증을 하는 방식 대신 보증기관이 각 은행에 보증총량을 부여하고, 은행이 직접 심사 후 보증대출을 공급하는 ‘포트폴리오 보증’ 도입도 고려 중이다.

○산업은행, 중견기업 지원 집중

신보, 기보, 산은, 기은의 중점 지원 대상도 상세하게 구분하기로 했다. 중복·쏠림 지원을 막기 위해서다. 신보는 성장형 창업기업에, 기보는 기술력 중심의 창업기업 지원에 주력하도록 할 계획이다.

대형 조선사 지원 후폭풍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산은은 앞으로 중견기업 지원을 위한 정책금융기관으로 변신한다. 또 투·융자 복합 방식 지원과 지식재산(IP) 금융을 늘릴 방침이다. 산은의 회사채 주관, 인수합병(M&A) 자문, 사모펀드(PEF) 등 투자은행(IB) 업무는 축소한다. 민간 금융회사의 영역을 침범하면서 금융산업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기은은 중소기업 지원에 집중하게 할 방침이다. 다만 단순 대출 방식의 지원에서 투자 방식 지원으로 전환한다. 또 기은은 기술신용대출을 늘리도록 할 방침이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