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선 둘째 낳으라지만…내 인생은 어쩌라고요"
외국계 회사에서 시니어매니저(부장급)로 일하며 1억원에 가까운 연봉을 벌고 있는 이수진 씨(39). 추석 명절 시댁에 다녀온 뒤 남편과 크게 다퉜다. 둘째를 낳으라는 시부모에게 불만을 나타낸 것을 남편이 못마땅해 하면서 부부싸움이 벌어졌다. 이씨는 “명절 때만 되면 아이 문제로 다른 가족과 껄끄러워지게 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털어놨다.

이씨는 여섯 살 된 딸이 하나 있다. 남편은 장손이다. 시댁 어른들은 입버릇처럼 ‘손자를 언제 볼 수 있느냐’고 하지만, 이씨는 둘째를 낳을 생각이 전혀 없다. 이씨는 “둘째를 낳게 되면 내 인생은 끝”이라는 다소 과격한 표현까지 썼다. “계속 일하고 싶은데 육아휴직을 또 쓰면 회사에서 자리를 제대로 잡을 수 없게 될 겁니다. 회사 눈치 보며 겨우 육아 전쟁을 끝냈는데 또다시 하려니 솔직히 엄두가 안 나네요.”

최근 남편이 벤처회사를 차린 뒤 월급을 제때 가져오지 못하면서 이씨가 실질적인 가장이 된 것도 둘째를 낳지 않으려는 이유 중 하나다. 남편은 다니던 회사가 인수합병(M&A)으로 구조조정되면서 희망퇴직했다.

박민희 씨(35)도 ‘둘포족(둘째 포기족)’이다. 박씨는 1년간 육아휴직을 보내고 작년 말 복직했다. 상반기 인사평가에서 최하위 등급을 받았다. 박씨는 “육아휴직을 썼던 직원들이 대부분 최하위 등급을 받았다”고 전했다. 입사 동기들과 연봉 차이도 벌어졌다. 육아휴직 기간에 월급이 오르지 않았고, 복귀 후 인사평가가 좋지 않아 월급이 동결돼 2년 전 연봉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엔 출산을 이유로 인사평가에서 차별해선 안 된다고 돼 있다지만 실제로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회사를 그만둘 각오가 돼 있으면 소송하라는 변호사 말에 가만히 있기로 했습니다.”

박씨는 “애를 봐주는 입주 도우미를 쓰면 비용이 만만치 않아 출퇴근 도우미를 구했는데, 회사에서 오후 6시에 퇴근하기 어렵다보니 남편과 번갈아가며 퇴근 전쟁을 벌이고 있다”며 “퇴근 후에는 식사 준비와 장난감 정리, 설거지에 눈코 뜰 새 없이 시간을 보낸다”고 털어놨다. 그는 “아이 낳고 나만의 시간이 완전히 사라졌다”며 “일과 가정을 유지하려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둘째는 아예 생각도 안 한다”고 잘라 말했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