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원유 수출 재개 결정 파장

미국 원유수출 금지 40년 만에 해제…셰일오일 공급과잉 때문
수출물량 70% 아시아행 전망…중동국과 교섭력 증대 기대
셰일오일 처리설비 확보·석유제품 수출지역 다변화 필요

"저유가로 경영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미국산 경질원유와
석유제품의 유입은 제품시장의 가격 경쟁 격화로 이어져
정제마진이 더욱 줄어들 것이다"

문영석 < 에너지경제연구원 석유가스정책연구본부장 >
[뉴스의 맥] 미국 원유수출 재개 임박, 정유업 수익성 악화 대비해야

9월10일 미국 하원 에너지·전력 소위원회는 미국의 원유 수출 금지를 해제하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미국의 원유 수출 금지 해제 여부는 올 연말이나 내년 초 상원에서 결정될 예정이고, 1975년부터 유지해온 미국의 원유 수출 금지 정책이 조만간 폐지될 전망이다.

작년 말부터 급락하기 시작한 국제 원유가격 변동 추세를 볼 때 미국의 원유 수출 정책의 전환은 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1970년대 중동발(發) 석유위기 이후에 내려진 수출 금지 조치는 미국이 세계 최대 원유소비국이자 수입국인 처지에서는 그 나름대로 합당한 정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미국은 세계 최대 원유생산국 지위를 목전에 두고 있고, 셰일가스전에서 나오는 경질원유는 국내에서 전량 처리가 곤란해 전체 저장탱크 용량에 육박하는 원유 재고가 쌓이는 상황이어서 원유 수출을 허용하자는 법안이 과거 어느 때보다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미국에서 최근 생산이 늘어나는 원유는 셰일가스를 추출하기 위한 수평시추정에서 가스와 함께 나오는 초경질유(라이트 타이트 오일 또는 셰일오일)다. 2009년부터 본격화한 셰일가스 붐을 타고 미국에서 시추 및 생산이 이뤄졌다. 셰일오일은 전통 원유에 비해 생산비는 높지만 황 함량이 적고 탄소 함유량이 많은 고급 원유로서 석유제품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처리 설비를 필요로 한다.
[뉴스의 맥] 미국 원유수출 재개 임박, 정유업 수익성 악화 대비해야

미국 원유 수출 금지 조치의 견해 차이는 원유 수출이 미국 경제, 특히 소비자의 연료비 하락에 도움을 줄 것이냐에 관한 해석 차이에서 비롯된다. 금지 조치 유지를 찬성하는 측은 미국 원유를 수출하면 미국 내 원유가격(서부텍사스원유·WTI 기준)이 상승하고, 이는 휘발유가격 상승을 초래할 것이라는 예상에 근거한다. 반면에 금지 조치 해제를 주장하는 측은 미국 내 휘발유가격은 국제 원유가격에 연동되지 미국 내 원유가격과는 거의 무관하고, 미국의 원유 수출로 인해 국제 원유가격이 하락하면 이는 오히려 국내 휘발유가격을 낮출 것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의 원유 생산은 2004년 하루 535만배럴에서 2015년 1~6월에는 하루 942만배럴로 약 75%나 증가했다. 이런 비약적인 미국의 원유 생산 증가는 국내 공급 과잉 현상을 발생시켜 미국 내 원유가격 하락을 초래했고, WTI와 브렌트유 사이의 가격 역전 현상을 불러왔다. 본격적인 미국 원유 증산 현상이 발생하기 이전인 2000~2009년 WTI는 브렌트유보다 배럴당 1.44달러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그러나 2010년 9월 이후 두 유종 간 가격 역전 현상이 발생해 현재(9월14일) WTI 가격이 오히려 배럴당 2.4달러 낮은 이례적인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미국 정유업자들은 상대적으로 좋은 품질의 원유를 싼 가격에 구입, 제품을 생산해 유례없는 호황을 즐기는 중이다. 따라서 이번 금지 해제 논의를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측도 정제업자 그룹이다. 하지만 원유 수출 금지 정책으로 미국의 석유제품 수출이 증가하면서 2009년 이후 석유제품 순수출국으로 전환하고 국제 정제마진 악화를 초래하고 있다. 미국 정유사들은 미국 내 저가 원유 사용으로 석유제품 가격 경쟁력을 확보해 국내 정제시설 가동률 상승과 함께 생산량과 수출량을 늘려가고 있다.

반대로 찬성 측의 주된 세력은 원유생산업자들이다. 가뜩이나 저유가로 경영이 어려운데 수출 금지로 헐값에 국내 정유업자에게 팔거나 그도 아니면 재고로 유지해야 해 신규 생산 확대에 차질을 초래하는 단계까지 도달했다. 이들은 수출 금지 조치 해제는 국내 생산을 활성화하고 가격 안정을 통해 신규 고용 창출 및 정부의 세입 확대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최근 미국 에너지정보국(EIA)은 이런 견해를 지지하는 전망보고서를 내놓았다.

한국에는 어느 쪽이 좋을까. 국제 석유시장에서 기름을 전적으로 수입하는 한국은 저유가 혜택을 어느 나라보다 향유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국내 정유산업의 수익성 악화와 해외 자원개발 투자의 부실화라는 그늘도 엄연히 존재한다. 미국 원유 수출 재개의 파급 영향을 짐작해보기 위해서는 먼저 미국이 원유를 수출하면 그 양은 얼마이며 어느 지역이 미국 원유를 수입할지에 대한 전망이 필요하다.

저명한 국제 석유시장 전문예측기관인 IHS는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의 원유 수출 금지 해제로 미국 내 원유 생산이 현재 하루 930만배럴에서 2020년 하루 1050만배럴로 늘어나고 그중에서 하루 230만배럴 정도가 수출될 것으로 전망했다. 수출 물량의 행선지는 하루 160만배럴 정도가 아시아로, 30만배럴 정도는 유럽으로 갈 것으로 예측했다. 나머지는 기존 수출처인 캐나다로 향할 것이다. 결국 한국이 속한 아시아 시장이 주요 구매처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미국의 원유 수출은 한국에는 기회이면서 동시에 위협 요인이다. 기회 요인은 우선 대규모 원유 수입국인 한국 입장에서 선택 가능한 대규모 수입처가 추가돼 도입처 다변화를 통해 저가 원유를 수입하거나 직접 도입이 아니더라도 기존 중동산 원유 구입 시 교섭력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위협 요인은 가뜩이나 저유가로 경영이 악화하는 상황에서 미국산 경질원유와 석유제품의 유입은 제품시장의 가격 경쟁 격화로 이어져 정제마진이 더욱 줄어든다는 것이다.

미국 원유 수출 재개 시점, 그리고 당시의 국제 원유 수급 및 가격 상황에 따라 한국에 미치는 영향은 다르겠지만 위협 요인과 기회 요인이 공존하는 만큼 국내 석유산업은 이에 대한 대응책 마련에 미리 나서야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한국의 석유산업은 미국 원유로 수입처를 확대해 원유 도입 비용 절감 가능성을 모색해야 할 것이며, 최근 미국에서 도입하기 시작한 컨덴세이트(천연가스층에서 채굴하는 초경질유) 및 셰일오일을 처리할 수 있도록 설비를 적정화하는 투자에 착수해야 한다. 하지만 경질 석유제품을 두고 국제시장에서 경쟁이 더욱 격해질 전망이므로 수출처를 다변화하는 노력을 함께 기울여야 한다.

문영석 < 에너지경제연구원 석유가스정책연구본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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