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시장을 놓고 대만 TSMC와 삼성전자 간 경쟁이 치열하다. 파운드리 시장의 절대강자는 TSMC다. 삼성전자는 어디까지나 도전자 신분이다. 하지만 최근의 분위기만 따지면 삼성전자의 기세가 만만치 않다. 삼성은 지난해 말 첨단 14나노 공정을 개발했다. 이를 바탕으로 애플과 TSMC의 최대 고객 중 하나인 퀄컴과 시스코시스템스를 잇따라 뺏어왔다. TSMC도 가만있지 않았다. 최근 16나노 공정을 완성해 애플의 주문 일부를 되찾았으며 내년에 나올 아이폰7용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물량 대부분을 수주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반도체에서 영업이익률 30%대를 올리는 두 회사 간 경쟁은 메모리 산업에서의 30년 치킨게임과 맞먹는 사상 최대의 전투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파운드리 역량 키운 삼성전자, 대만 TSMC '아성' 흔들다
커지는 파운드리 시장

반도체 업체는 팹리스와 파운드리로 나뉜다. 반도체칩 개발과 설계만 전념하는 곳이 팹리스다. 반면 공정기술에 집중해 팹(반도체 라인)을 개설하고, 팹리스 주문에 따라 제조만 해주는 업체가 파운드리다.

TSMC는 파운드리란 산업을 일군 원조 회사다. 올해 83세인 모리스 창 회장이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에서 25년간 일한 뒤 1987년 고국에 돌아가 세운 회사로 시장 점유율이 50%에 이른다. 지난해 매출 27조6057억원, 영업이익 10조7050억원을 거둬 영업이익률이 38.7%다. 잘나간다는 삼성 반도체사업 전체보다 작년 영업이익이 2조원 가까이 많다.

삼성과 TSMC는 그동안 부딪치지 않았다. 삼성은 메모리, TSMC는 파운드리에 집중해서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부터 달라졌다. 커지는 파운드리 시장을 주시하던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는 2007년 애플로부터 AP 주문을 받아 역량을 키웠다.

파운드리 시장 규모는 2013년 404억달러로 D램과 낸드플래시, CPU(중앙처리장치) 시장을 추월했다. 올해 500억달러를 돌파해 2020년엔 780억달러 수준까지 커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스마트폰에 이어 사물인터넷(IoT), 무인자동차 등이 나오면서 반도체 수요가 늘고 있어서다.

뺏고 뺏기고…관건은 최첨단 공정 개발

TSMC의 위기감은 커졌다. 두둑한 지갑을 가진 삼성은 업계 2, 3위 UMC나 글로벌파운드리와 다른 차원의 경쟁자여서다. TSMC의 창 회장은 2012년 기업설명회(IR)에서 “향후 최대 경쟁자는 삼성전자가 될 것”이라고 경계했다. 또 TSMC에서 일하다 2011년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로 옮긴 량멍쑹 부사장에 대해 ‘공정 기술을 유출했다’며 대만 법원에 제소하기도 했다.

싸움이 본격화된 건 2012년 말이었다. 삼성과 특허분쟁을 빚던 애플이 아이폰6용 AP 주문을 TSMC의 20나노 라인으로 돌린 것. TSMC는 신났고, 삼성의 기세는 꺾였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마저 갤럭시S4, S5의 AP를 퀄컴에서 조달하자 2014년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의 매출은 9조7000억원(추정)으로 2013년(13조원)보다 크게 줄었다.

사장까지 교체한 시스템LSI사업부는 ‘차세대 14나노 공정을 먼저 개발해 애플이 돌아올 수밖에 없도록 하겠다’는 전략을 세웠고, 보기 좋게 성공했다. 올초 14나노 공정 가동을 시작한 삼성은 아이폰6S에 들어가는 A9 주문 대부분을 따냈다. 또 퀄컴을 끌어들였고, 이번에 시스코로부터도 주문을 받았다. 초도물량은 1000억원 미만으로 추정된다. 파운드리는 특성상 첫 주문을 따기 어려운 반면 물량을 늘리는 건 상대적으로 쉬운 점을 감안하면 수주금액은 상당히 늘어날 전망이다.

물론 파운드리 매출만 보면 TSMC가 삼성의 10여배에 이른다. 하지만 마진이 큰 첨단 공정으로 가면 삼성이 올해 TSMC를 앞설 것으로 관측된다. 업계 관계자는 “TSMC에만 의존하던 시스코가 밸런싱(중심 잡기)을 위해 삼성에도 주문한 것으로 보인다”며 “삼성이 제조한 칩 성능에 만족한다면 향후 물량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TSMC는 최근 16나노 공정을 완공하고 세계 최대 그래픽칩 업체인 엔비디아의 주문을 지켜내는 등 수성에 나섰다. 또 대만 경제전문지 공상시보는 “TSMC가 2016년 나올 아이폰7의 프로세서를 100% 생산할 예정”이라고 최근 보도했다. 삼성과 같은 수준의 공정만 개발해도 애플은 라이벌인 삼성보다 TSMC에 주문할 가능성이 크다.

TSMC는 차세대 10나노 공정 개발도 서두르고 있다. 창 회장은 지난해 “16나노 공정에선 경쟁사에 졌다. 2016년에 다시 리더십을 찾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 파운드리

foundry. 반도체 설계 업체(팹리스)에서 설계도면을 받아 생산만 전담하는 기업 또는 업종을 말한다. 종류가 다양하고 생산원가가 비싼 반도체 특성상 설계와 생산을 동시에 하기 어렵다는 점에 착안해 대만계 미국인인 모리스 창이 1987년 최초의 파운드리 TSMC를 설립했다. 파운드리는 여러 회사에서 위탁받은 반도체를 대량 생산해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김현석/남윤선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