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훈의 데스크 시각] 걱정스러운 옐런의 '중국 걱정'
지난 17일 재닛 옐런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기준금리 동결 배경을 설명하면서 중국을 거명한 것은 이례적인 것이었다.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의 성장률 둔화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는 발언은 외교적 결례에 가까웠다. 하지만 중국 당국은 미동도 없다. 미국의 반대를 정면으로 돌파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창설을 서두르던 몇 달 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중국 제조업은 과잉설비 과잉재고로 몸살을 앓고 있다. 중국에 수직계열화 형태로 편입된 대만 경제도 동반 추락 중이다. 수익성 악화를 동반하며 빠르게 늘고 있는 기업들의 부채는 위험수위에 근접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10조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외화 부채는 3조달러 안팎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7년간의 양적 완화 시대에 ‘환차익의 달콤함’에 빠져 제로금리 부채를 앞다퉈 끌어들인 결과다.

‘슈퍼달러’에 신음하는 위안화

이런 상태에서 미국이 금리를 올리기 시작하면 정부 지원으로 힘겹게 버티고 있는 ‘좀비 기업’들은 곧장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제법 이름 있는 대기업이 달러 부채를 부도내는 순간에서 시작된다. 기업신인도 하락과 금융안정성 훼손이 어느 정도의 충격을 몰고올지는 짐작조차 어렵다.

미국의 금리인상 파고를 헤쳐 나갈 수 있는 중국의 가장 유력한 선택지는 위안화 평가절하다. 이미 중국 인민은행은 지난달 11~13일 사흘간 위안화를 4.7% 기습 절하했다. 당초 경기 침체와 수출 기업의 채산성 악화를 막기 위한 차원으로 해석됐지만 무역수지보다는 자본수지의 정상화를 겨냥한 조치로 보는 시각이 점차 늘고 있다. “위안화 절상은 끝났다. 부채, 특히 달러화 부채를 늘리지 말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는 얘기다.

중국은 ‘슈퍼 달러’의 힘을 실감하고 있다. 트럭으로 갖다 줘도 기름 한 방울 살 수 없는 위안화와는 격이 다른 기축통화의 위력이다. 애꿎은 아시아 주변국에 위안화의 위상을 강조할수록 그 의도와는 정반대의 양상을 마주해야 하는 것이 중국 당국의 딜레마다. 전문가들은 위안화 절하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달러의 힘이 세질수록, 경기침체가 길어질수록 그 속도와 폭은 빠르고 깊어질 것이다.

韓 기업, 中과 전면전 준비해야

위안화 추가 절하는 한국 기업들에 엔저만큼이나 큰 시련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높다. 중국이 위안화 절하로 수출을 늘리면 한국 기업들도 혜택을 볼 것이라는 분석은 ‘철 지난 시나리오’일 뿐이다. 이제 한국 제조업은 전 세계 시장에서 중국과의 일대 결전을 각오해야 한다. 위안화 절하가 시작되면 다른 신흥국 통화들도 도미노식 하락이 불가피하다. 자욱한 포연 속에 한국 수출전선 곳곳에 구멍이 뚫릴 것이다.

“10월에도 금리인상이 가능하다”는 옐런의 발언은 중국 경제의 방만과 부실을 비수처럼 파고든다. 하지만 중국보다 더 다급하고 절박한 곳이 한국 경제다. 비록 성공 가능성을 의심받고 있지만 중국은 경제 활성화를 위한 프로그램을 확정한 상태다. 무엇보다 국가 리더십이 확고하다. 반면 우리는 모든 것이 불확실성에 휩싸여 있다. 예고된 악재가 코앞에 닥쳤는데도 무위와 무기력으로 일관하고 있다. 옐런이 시간을 벌어줘도 그렇다.

조일훈 증권부장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