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경제위기의 본질

G2 리스크에 휘청대는 신흥국…환율불안 가속
실물경제 둔화 장기화 치명적…글로벌 교역도 위축
선진국 수요 중시하며 엔화 등 환율 변동에 대응해야

"현재의 신흥국 금융시장 혼란은 금융위기의 전조라기보다는
실물 측면의 둔화를 선(先)반영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신민영 <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 >
[뉴스의 맥] 신흥국 위기, 금융 아닌 실물경제 위축이 더 문제다

지난달 중순, 갑작스러운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를 계기로 올여름에도 어김없이 나타난 신흥국 금융불안이 초가을까지 이어지고 있다. 신흥국 통화, 주가 약세와 더불어 원유 구리(銅) 같은 원자재가격 약세도 심해졌다. 이에 따라 ‘9월 위기설’이니 ‘10월 위기설’이니 하는 신흥국 위기설이 확산되고 있다. 세계 1, 2위 대국의 경제가 반대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는 결과다. 미국은 금리 인상 시기를 저울질하는 반면 중국은 경착륙 우려를 낳고 있다. 그 가운데 낀 나라들, 특히 최근 하향세를 보이는 신흥국들이 그 충격파의 직접적 표적이 되고 있다. 취약 신흥국의 산발적인 위기 가능성은 눈여겨볼 문제다.

그렇지만 현재의 금융불안이 1990년대 후반 동아시아 금융위기와 같은 금융위기로 확대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신흥국의 외환 부문 안정성이 개선됐고 많은 나라가 변동환율제도로 이행해 대외 충격 흡수력을 높였다.

금융위기 가능성보다는 오히려 신흥국 전반에 걸쳐 실물경제 위축이 장기화될 가능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90년대 후반 아시아 금융위기가 ‘급성병’이었다면 이번 신흥국의 실물경제 둔화 위기는 ‘만성병’이어서 치유에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
[뉴스의 맥] 신흥국 위기, 금융 아닌 실물경제 위축이 더 문제다

먼저, 대규모 설비투자와 상품 수출 증대를 통한 신흥국의 성장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제조업은 서비스 부문에 비해 생산성이 높고, 수출은 교육과 도시화 등에 파급효과를 미치며 성장세를 끌어올린다. 일본에 이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호랑이’, 뒤이은 중국을 끝으로 ‘산업화를 통해 중진국으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약해지는 모습이다.

신흥국 제조업 성장사다리 손실

정보통신기술(ICT) 발전에 따라 각국이 글로벌 제조업체에 대한 노동시장 개방만으로 쉽게 글로벌 공급사슬에 참여할 수 있게 됐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제조업 생산지가 여러 나라로 분산되고 임금이 빠르게 오르면서 다른 생산지로 생산 기반을 옮기는 경우가 빈번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같은 구매력의 소득 수준에서 제조업 비중이 낮아지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의 대니 로드릭 교수는 이를 ‘때 이른 탈(脫)공업화’라고 이름 붙였다.

세계 수요가 상품 소비에서 헬스케어와 교육, 통신 등 서비스 소비로 이동하는 ‘세계경제의 서비스화’가 진전되는 것도 고속성장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금액 기준으로는 상품교역이 세계교역의 8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부가가치 기준으로는 50%대로 낮아졌다. 관련 제도와 관행 등 기반이 취약해 신흥국이 제조업이 아닌 서비스를 통해 빠르게 성장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으로 평가된다.

다음으로 세계교역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경기 측면에서 글로벌 수요 자체가 부진한 것이 사실이지만, 경제성장세 둔화보다 교역을 더 위축시키는 구조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글로벌화가 진전되면서 1980년대 중반 이후 높아진 교역의 성장 탄력성이 2000년대 들어 다시 낮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신흥국에서 일종의 자립 경제화가 이뤄지면서 글로벌 공급사슬이 단순 가공무역에서 현지에서 중간재를 조달하는 중계무역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중국은 수출 대비 부품 등 중간재 수입 비율이 1990년대 중반 65%에 달했지만 2010년대 들어 30%대 초·중반으로 떨어졌다.

통화 약세에도 수출 늘기 어려워

세계 수요의 구성 변화도 교역을 위축시킨다. 수입유발도가 높은 투자 비중이 줄어들고, 상대적으로 수입유발도가 낮은 소비와 정부 지출 비중이 커지고 있다. 무역금융 부진, 무역보호 조치 강화 등도 교역 위축의 요인이다.

문제는 현재와 같이 신흥국의 통화가치가 절하돼도 신흥국 수출이 늘어나기 어렵다는 점이다. 통화 약세는 전체 수출품 가격이 아니라 수입 중간재를 뺀 나머지, 즉 국내에서 창출한 부가가치의 판매가격만 떨어뜨리게 된다. 글로벌 분업의 심화로 글로벌 공급사슬이 지역적으로, 단계상으로 더욱 세분화하면서 중국과 같은 제조업 기반이 확충된 나라를 빼면 국내 부가가치 비중은 더 작아지고 있다.

산유국 등 자원수출국은 대부분 제조업 기반이 취약해 통화가 약세를 보여도 수출할 상품이 없다는 문제가 있다. 반면 통화 약세로 자국통화 표시 수입가격은 높아져 이 나라들의 수입이 줄어들면서 세계교역 부진을 심화시키고 있다. 신흥국 간 환율전쟁은 글로벌 교역의 국가 간 재배분이 아니라 글로벌 교역을 위축시키고 결과적으로 세계경제 성장을 좀먹는다.

현재의 신흥국 금융시장 혼란은 금융위기의 전조라기보다는 이런 실물 측면의 둔화를 선(先)반영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신흥국(Emerging economies)’이라는 표현에 대해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1980년대 초반 세계은행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신흥국 용어는 경제적 역동성을 바탕으로 선진국과의 격차를 줄여갈 것이라는 점을 함축한다. 그러나 하나의 범주로 묶기에는 나라마다 차이가 너무 크며 ‘신흥(emerging)하지 않는 나라’도 많다. 러시아와 브라질은 신흥국이라기보다는 ‘퇴행국’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미국 대비 1인당 구매력 측면에서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는 ‘잠수국(Submerging economies)’으로 분류할 수 있다.

올 들어 7월 말까지 한국의 수출은 4.9% 하락했다. 향후 회복세를 띤다 해도 한계가 있어 보인다. 세계 수입 수요의 65%는 선진국 수요다. 한국은 신흥국으로의 수출이 50%대 후반에 달한다. 여전히 신흥국의 성장이 빠르다는 점에서 신흥시장에 주목해야겠지만 신흥시장은 환율과 경기 등의 변동성이 워낙 크다. 선진국 수요를 중시하는 가운데 신흥국에 대해서는 선별적인 접근이 이뤄져야 할 이유다.

원화 약세 흐름 활용해야

신흥시장 전반의 통화 약세 흐름과 중국 경제와의 밀접도 등으로 원화는 약세 흐름을 탈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다. 언제까지 환율에 기댈 것이냐는 비판에 명쾌하게 답하기는 어렵지만 환율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특히 일본 엔화 환율은 너무도 중요하다. 1980년대 후반의 3저(低) 호황도, 이후 일본 기업의 쇠퇴와 한국 기업의 성공도 엔화의 급격한 강세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최근 일본 경제가 회생 조짐을 보이는 것도 엔화 약세의 결과다.

아시아 금융위기와 미국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원화 약세에 힘입은 바 크다.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로 원화 약세폭은 크지 않겠지만 세계경제의 흐름을 활용해 단기적인 경기 대응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성장력 회복의 발판으로 삼는 지혜가 필요하다.

신민영 <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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