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K골프 돌풍의 그늘
골프는 어렵다. 힘 빼는 데 3년, 마음 비우는 데 3년이다. 마음 비웠더니 자신감 채우라며 레슨 프로가 또 3년을 다그친다. 드라이버 잡으면 아이언이 고장 나고, 아이언 잡으면 퍼팅이 말썽이다. 세 가지 다 수습했다 싶으면 어느새 18번홀, 날 새는 게 골프다.

그 어려운 골프를 하겠다는 사람이 국내에 386만명(한국레저산업연구소)이라니 놀랍다. 경쟁과 성취 본능을 자극하는 ‘치명적 매력’ 때문이란다. 오죽하면 영국 골프 칼럼니스트 헨리 롱허스트는 “골프의 유일한 결점은 너무 재미있다는 것”이라고 했을까. 골프는 묘하다.

세계 골프 표준이 된 K골프

그 오묘한 골프를 신기하게도 잘하는 이들이 한국인이다. 여자 골프는 세계 최강이다. ‘놀이 DNA’ ‘젓가락 기술’이 한국 여자에게만 있는 게 아닌데도 그렇다. ‘침묵의 암살자’ 박인비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커리어그랜드슬램을 달성했고, ‘플라잉 덤보’ 전인지는 한·미·일 3개국 메이저 대회를 제패했다.

한국계 선수까지 포함해 K군단이 올 시즌 일궈낸 LPGA 승수가 16승. 지금까지 열린 22개 대회의 72%가 한국 잔치로 끝났으니 독식이나 다름없다. 하루 10시간, 10년 이상 쏟아붓는 ‘세계 최다 연습량’ 덕분이다. 미국 저널리스트 말콤 글래드웰이 갈파한 ‘1만시간의 법칙’을 3배 이상 뛰어넘는 ‘다 걸기’ 투자다. 우승하려면 한국 선수처럼 연습하라는 글로벌 골프의 ‘표준’이다.

성실만큼이나 둘째가라면 서러운 게 한국인의 골프용품 사랑이다. ‘뭐 크게 달라지겠어?’ 하는 것은 겉마음이다. 1m라도 더 보내기 위해 클럽을 바꾸고 또 바꾸는 게 많은 골퍼의 속내다. 그러고 보면 새벽 3시까지 밤을 새우고도 5시면 자동으로 눈이 떠지는 ‘골프 오타쿠(おたく)’들이 인구의 10%쯤 되는 게 한국이다. 이 열정이 세계 3위 골프용품 소비로, 자식 골프교육으로 이어진다. 외국 언론들이 한국 골프를 ‘경이(驚異)’로 표현하는 것도 그래서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정작 경이로운 것은 이런 나라에 변변한 골프산업이 없다는 현실이다. 브랜드를 만들려는 창업자가 없고, 국산 소비층이 없고, 키우려는 정책 의지도 없는 ‘3무(無)’로 허송세월한 결과가 ‘반쪽짜리 K골프 열풍’이다. 지난해 골프용품 3억400만달러어치를 수입해 쓴 우리가 수출한 것은 2075만달러어치다.

정부는 올초 골프산업 활성화 방안을 내놓겠다고 했다. 하지만 반 년이 지나도록 감감 무소식이다. 나오기는 할지도 의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골프를 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감을 잡지 못하는 이들이 많은 걸 봐도 그렇다.

실리를 챙기는 쪽은 따로 있다. 지난해 수입 골프용품의 70%(관세청)가 일본에서 들어왔다. 중국의 추격은 더 무섭다. 겉으로는 ‘녹색아편’이라며 골프장을 갈아엎는다. 뒤로는 ‘미 대륙을 점령하라’며 주니어 선수 3만명을 육성하는 게 중국이다.

이런 ‘산업 기형’을 치유할 시간은 많지 않다. 112년 만에 골프를 정식 종목으로 다시 채택한 2016년 브라질 올림픽부터 ‘반쪽짜리 잔치’가 될 공산이 크다. 한국 선수들끼리 금·은·동을 휩쓸더라도, 시상대에 함께 올라갈 우리 브랜드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K골프의 눈부신 성취보다 그 그늘에 자꾸 시선이 가는 이유다.

이관우 문화스포츠부 차장 leebro2@hankyung.com